2024년 4월호

이동

제6회 모범구민상 효행부문 최정애씨

  • 1999-03-25 00:00:00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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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모시더니, 이제는 친정 어머니네. 요즘 사람 아니야!.”

37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양학수씨와 혼담이 오갈 때는 선뜻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다.
이북 원산에 대부분의 가족을 두고 중풍의 홀어머니와 단칸방에 사는 총각을 신랑으로 받아들인 것은 장성한 아들이 수족을 못 쓰는 어머니를 간호하는 모습과 그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 애처러워 보였기 때문이라 한다.
중풍의 시어머니와 함께 단칸방 신혼생활이 시작되었다. 천성이 온순하고 부지런한 성격으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다. 풍체가 좋은 남편과 식성이 좋아서 최정애씨 보다 두배에 가까운 체구의 시어머니의 빨래감만 해도 새색시에게는 큰 일감이었다.
특히 상추쌈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며느리가 싸서 입에 넣어주는 데로 그저 맛이 일품이라 하셨다.
피붙이라고는 아들 한명 뿐인 어머니를 최정애씨가 아니면 누가 거두겠는가? 라는 생각에 애처러운 마음이 한결 같았다.
날이 갈수록 스스로 터득한 요령이 있었다. 어머니의 등뒤에서 배를 두 팔로 감싸안는다. 두 팔에 힘을 주어 어머니의 몸을 살짝 들어 오른발로 요강을 밀어 용변을 보시게 했다.
매일 씻어 드린다 해도 손발에 때가 오르면 최정애씨는 등 뒤에서 두 손에 막대기를 잡고 그 위에 어머니를 앉게 하신 다음 업고 목욕탕으로 걸어갔다.
손재주가 있는 최씨는 직접 접은 빨간 종이 카네이션을 어머니의 가슴에 달아드리고 절을 올리면 제일 많이 우셨다 한다.
결혼한지 8년만에 드디어 합판으로 지은 내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직장생활을 착실하게 해온 남편의 힘과 결혼 때 받은 목걸이를 처분하여 샀던 밭을 틈틈이 일구어 얻은 결과이기도 했다. 사는 모습을 보고 감동받은 목수가 덤으로 방 한칸을 더 넣어주어 두 칸의 방을 마련할 수 있었다. 어머니를 따로 모실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 옆방으로 옮기시는 것이 섭섭다 하시어 보름동안이나 빈방을 옆에 두고 아이들 네명과 함께 생활했다.
20여년을 한결같이 모셔온 최정애씨의 생활에 무슨 잘못을 찾아 내겠는가? 가끔 성당에 가서 고백성사(천주교 신자가 하는 죄의 고백)를 본 후에 다시 어머니를 뵐 수 있었다. 79세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6개월 동안 고백성사도 볼 수 없을 만큼의 죄인이 되어 있었다.
“조금 더 잘해 드릴걸.” 어머니께 잘 못해 드린 기억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남편은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아내를 보고는 집안에 남아있는 어머니의 사진을 모조리 감추기에 이르렀다.
세월이 흘러 네자녀를 훌륭히 교육시켜 모두 출가시켰고 두 부부가 살아가기에 어렵지 않는 재산도 모았다. 그러나 빚보증을 잘못하여 재산을 몽땅 날리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28평의 집은 남게 되었지만 그 충격으로 두 부부의 건강이 많이 나빠지게 되었다. 봉사활동하는 남편의 수입으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해 오고있다.
그러던 중 5년 전 중풍으로 친정 어머니마저 쓰러지자 친정 어머니를 이웃으로 모셔왔다. 시어머니와는 달리 잘 잡수시지를 않는다. 치매까지 겹쳐 온갖 욕설은 참아낼 수 있지만 드시지 않는 것을 보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 죽을 쑤어 빨대로 입에 불어넣어 드린다.
“어제는 몇 모금 드시더니 오늘 기력은 좀 나으시네.”
89세의 노모를 바라보는 딸의 마음이다. 연약한 노모이지만 60세를 바라보는 딸에게는 힘이 부친다. 휠체어에 모시어 목욕탕에 간다.
“시어머니 모시더니, 이제는 친정 어머니네. 요즘 사람 아니야!.”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둘째 아들이 카톨릭 신학대학에 입학한 것을 은근히 물어 보았다. “한번도 신부 되라고 한 적은 없어요. 평생 동안 할머니께 대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남에게 봉사하는 삶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고맙지요. 저 사람은 천성이 착한 사람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무엇을 남겨주어야 하는지, 남겨줄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자식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며 자살을 선택한 부모이야기며, 치매의 부모가 부담스럽다고 버리고 도망가는 자식의 이야기가 뇌리를 스친다.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상이라면 오히려 부담없이 받겠다며 효부상은 당치도 않는다는 최정애씨. 어렵게 만든 자리에 함께 해주신 최정애씨에게 다시한번 감사 드린다. <박영희 명예기자>

최종수정일2020-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