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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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의 문화유산을 찾아서 36 - 구포기로사(耆老社)와 구포청년회 활약상

  • 1999-05-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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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이 성 북구 낙동문화원 원장

일제시대 구포지역에서 50세의 연령을 넘긴 노인들이 모여 향토와 국가의 현실을 타개하고 미래를 이끌어 갈 지역사회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역할을 해내기 위하여 1918년에 기로사(耆老社)를 창립하였다.
기로사의 문헌인 기로사 원안(原案), 발기문(發起文) 취지서(趣旨書) 좌목(座目)등 3가지 문서의 내용에 의하면 그 당시 참여한 노인들의 명단이 나와 있다. 그리고 1922년 구포의 청년들이 모여 나라는 일제에 빼앗겼으나 향토를 지키면서 민족의 얼을 일깨우고 심는데 주력하겠다는 결의 아래 구포청년회(龜浦靑年會)를 창립하였다.
구포청년회 회의록에 보면 1922년 2월5일 창립한 이후 1928년 8월12일까지의 회의 내용이 국한문 혼용의 붓글씨로 기재되어 그 활약상이 나타나 있다.


구포기로사 (龜浦耆老社)·1918년 창립

구포에는 일찍이 시대적 변천에 앞서서 앞날을 내다보는 선각자들이 있었다. 구포기로사(龜浦耆老社)도 이러한 선대들의 분명한 인생관(人生觀)에서 창립 되었으며, 그 전통과 맥이 지금도 이어져 내려와 이 지역에 현존하고 있는 것이다.
‘기로(耆老)’란 말은 ‘60이 넘는 노인’을 일컫는데 노인의 휴식처로서의 기로사는 향토와 국가의 현실을 타개하고 미래를 이끌어 갈 지역사회의 정신적 지주(支柱)로서의 역할을 해 내었던 곳이다.
구포기로사(龜浦耆老社)가 창립되기는 3·1독립만세운동 전년인 1918년 3월이었다. 기로사(耆老社)에 관한 문헌으로는 기로사 원안 발기문 취지서(趣旨書) 좌목(座目)과 기로사 지정원취지서(指定員趣旨書) 좌목 등 2가지 책이 보존되어 있는데, 이 내용에 의하면 당시 활동가이던 유홍환(兪弘換), 강신호(姜信鎬)씨가 주동이 되어 이 지방 원로제씨(元老諸氏)를 모시고 뜻을 모아 창립된 것이다.
이때 참여한 노인들은 구포 일원은 물론이요 사상 지역에서도 참가하였음이 그 명단에 나타나 있다.
기로사취지서(趣旨書)와 지정(指定) 원안(原案)에는 구구절절(句句節節) 지역을 지키며 살아 온 원로들의 인생에 대한 감회와 소신이 담겨있는 명문으로 남아있다.


기로사(耆老社) 취지서(趣旨書)

하늘이 인간에게 전체적으로 부여(賦與)한 것은 성명(性命)이다. 인간들이 (개별적으로) 하늘로부터 받은 것은 수명(壽命)과 행복이다. 이미 하늘이 준 성명(性命=性品)을 받고 또 하늘의 수명과 행복을 받아 이 세상에서 나고 자라고 늙는 것은 이 세가지 생(生), 장(長), 노(老)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니 그 개인의 수명, 행복, 성품을 여러 사람과 함께 즐김이 더 좋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사람이 70세 살기 옛날부터 드물다(人生七十古來稀)’는 두보가 술값이 없어 주점(酒店)에 옷을 전당(典當) 잡힐 때에 (朝朝一日典春衣) 지은 시구(詩句)요, 아침에 검던 머리카락이 저녁엔 눈발처럼 허옇다(朝如靑絲暮成雪)는 이태백(李太白)의 장진주사(將進酒辭)에 나온 말이니 어찌 시인들이라고 늙음을 아까와 한 달관자(達觀者)가 아니겠느냐!
이른바 내 마음을 먼저 알아 말한 것이니, 지금이나 옛날을 살펴 보아도 옛사람에게 조금도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에 동지(同志) 몇몇 사람과 의논을 함께하여 연한 50세 이상부터 7,80까지 모두한 모임을 만들어 좋은 때 좋은 날짜에 꽃 피는 아침, 달 뜨는 저녁에 술을 장만하여 서로 맞이하여 혹은 가을의 흥취를 읊고, 혹은 가을의 슬픔을 읊어 노년에 느끼는 회포를 한바탕 풀면 서정(舒情) 역시 태평시대의 좋은 일일 것이다.
오직 원컨데, 여러 군자들은 차차 ‘어진이는 수명이 길다(仁者壽)’는 경지를 밟으시고, 차례대로 함께 즐겨 여생을 마치시고, 또한 후손들이 조상의 뜻을 이어 영구히 쇠퇴하지 않도록 했으면 하노라.


기로사(耆老社) 지정원안(指定 原案)

봄과 가을이 바뀌는 것은 천시(天時)의 상도(常道)요, 노인과 소년이 자리를 바꾸는 것은 (新陳代謝) 인간의 법칙이니, 사람이 천지(天地)의 양자간(兩者間)에 젊어서 늙어지므로 늙은이가 소년을 예뻐하고 젊은이로서 늙은 이를 공경함은 옛날과 지금의 공통된 옳은 이치이다.
이제 이 기로사(耆老社)를 년한(年限) 50세 이상이 모여서 처음 발기(發起)한 것이니 진실로 태평시대의 좋은 일이며, 역시 고장이나 마을의 자랑이다.
주역(周易)에 말하기를 ‘사람의 인성(人性)은 처음 타고난 대로 죽을 때는 바르게 돌아간다. (原始反終姑 知仁義之說)’했으니 모든 우리 기로회원 동지 후보들은 어찌 오늘의 소년으로만 그치겠느냐?
본회 규칙을 따라 연한 50세 이상을 차례대로 명부(名簿)에 기록하면 뒷날 사람이 지금을 보는 것이나 지금 사람이 옛날을 보는 것이나, 무엇이 다르랴!
그윽히 지정된 여러 군자에게 바라는 일은 이 뜻을 깨달아 쇠퇴하지 말기를 빌 뿐이다.


구포청년회 (龜浦靑年會)·1922년 창립

일제시대 1922년에 창립된 구포청년회(초대회장 尹永殷)는 노동야학교(勞動夜學校)와 여자야학교를 운영하여 공립보통학교에 가지못하는 학생들을 야간으로 교육시켰다. 그리고 구포면민 육상운동회를 개최하여 면민의 축제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의용소방대 활동과 토론회 개최 등 지역사회를 위한 청년활동을 다양하게 펼쳤다.
구포청년회의 활동 상황은 1922년부터 1928년까지 기록한 구포청년회 회의록에 나타나 있다.
그리고 구포청년회 외에 구포면려(勉勵)청년회 구포여자청년회가 구포지역의 청년단체로서 활동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구포청년회의 활약상을 보면 노동야학교와 여학교를 운영하여 당시 공립보통학교에 가지 못하는 청소년을 모아 2년동안 전과정을 가르쳐 문맹을 퇴치하는데 공헌하였다. 그리고 해마다 구포면민 육상대회를 열어 지역사회의 화합과 단결을 이끄는 등 많은 활동을 벌였다.
구포의 노동야학교와 여학교는 구포청년회 회원들이 교육을 담당하였고 구포선창의 노동자들이 1전씩 푼푼이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학교운영비에 충당하였다. 1930년대 구포기로사 사옥과 노동야학교 교사로 쓰던 건물이 노후하여 이를 축소 개축하고 남은 자리에 구포회관(龜浦會館)을 신축하여 주간에는 집회장으로 쓰고 야간에는 노동야학교 교실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1937년 3월 구포장학회(龜浦奬學會)를 발기하여 그 기금으로 노동야학교를 운영하고 기로사 사옥과 구포회관을 유지 관리하는데 사용하였다.
구포에 구포청년회가 활동하던 시기에 화명동 대천마을에도 1924년 화명청년회(華明靑年會)가 발족되어 마을 회관을 짓고 신학문을 가르치는 주야학교를 설립, 운영하였다. 그리고 농촌문고를 창설 농촌 청년들의 지식을 넓히기 위하여 책읽기를 권장하였다. 그리고 농번기에는 공동작업으로 일손을 돕고 농한기에는 음주, 도박 등 잡기를 방지하는 운동을 벌였다.


최종수정일2020-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