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이동

더불어 사는 삶 - 맹인에 등불 밝힌 조막손, 임종욱씨

  • 1999-01-25 00:00:00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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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 덕천1동

잃은 것보다 남은 것이 더 소중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꼼짝도 할 수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 임종욱씨가 25년째 침대에 누워 생활하고 있다. 자신의 혼을 점자 한자 한자에 불어넣어 주고 있는 바로 그 주인공. 과연 그는 누군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인가?
그에게 남아있는 것이라곤 살아 있음을 알리는 심장과 인간이기를 갈구하는 머리 그리고 무엇인가를 해보려는 두 개의 손가락. 이것이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의 전부이다. 그러나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두손을 모아 점역을 하고 있다.
맹인의 눈이 되어 그들에게 지식을 안겨 주고자 하루 10시간의 중노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점필을 든 임종욱의 두 손바닥과 팔꿈치는 짓물러 피가 흐르는 고통이 있다.
하지만 임종욱은 점역을 놓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그동안 점역한 책은 1천여권이 넘는다. 문학서적, 참고서, 전공서적 등 수북히 쌓이는 점역 줄기를 다독거리는 임종욱의 심정은 어떠할까? 할 수 있다는 해내었다는 그래서 잃어버린 절망 속에 있기보다는 한 점의 희망이 되어 잃은 자의 남은 것이 되고 있다는 뿌듯함이 그의 작은 가슴을 꽉 메우고 있을지 모른다.
이런 보람 속에서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든다. 잠자는 것보다 쉬운 것은 없지만 그는 잠조차 혼자서 잘 수 없다. 누군가 뒤집어 뉘어 주어야 한다.
어디 잠자는 일 뿐이랴. 세수하고 밥 먹고 심지어 대소변까지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어머니의 무표정한 얼굴과 한꺼번에 몰아쉬는 긴 한숨은 어머니의 고통의 크기를 말해준다.
육상선수의 꿈을 가지고 있던 임종욱은 갑자기 닥친 장애의 덧에 걸려 장애가 이토록 큰 아픔인줄 미쳐 몰랐었다. 살다가 자기에게 이러한 불행이 찾아올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고등학교 입학을 며칠 앞둔 1974년 2월 25일 새벽. 연탄가스를 마셔 옥상으로 바람 쐬러 올라가다 2층 계단에서 아래로 떨어져 목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던 것이다. 부산대학병원에 한달간 입원 치료하였으나 어깨아래 부분은 어느 한곳도 움직일 수 없었다. 퇴원 뒤에도 임씨를 일으켜 세우겠다는 가족들은 백방으로 뛰었지만 허사였다.
고쳐 보기 위한 노력, 그것은 차라리 희망이었다. 정상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포기한 후 그때 비로소 장애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자기의 짐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산다는 것은 치욕이었다. 죽음이 그를 계속 유혹했지만 죽음조차 선택할 수 없는 현실이었기에 미치도록 괴로웠다. 재처럼 파스러지기를 기다리고 있던 임종욱에게 작은 빛줄기 한가닥이 살짝 스며들어 왔다.
부산맹인복지협회에서 맹인들을 위한 점역작업을 할 봉사자를 찾는다는 라디오 안내 방송을 접하게 되었다. 그들의 눈이 되고자 하는 작은 소망이 확 피어올랐다.
보통 사람이 3-4개월 걸리는 것을 2주일만에 배울 수 있었다. 점역하느라 부르트고 물집이 생긴 곳에 굳은 살이 완전히 박힐 정도로 시간이 흐르자 임종욱의 점역이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닌 희생적인 봉사로써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가 엎드려 누워서 맹인들의 눈이 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아는 사람들은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임종욱의 봉사는 정말 대단한 결실을 맺었다. 그가 점역해준 책으로 공부한 이효상군이 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한 것이다.
그 외에도 부산시의 자랑스런 시민상(봉사부문), 늘푸른상(늘솔회) 등으로 이어졌다.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하여 수필집, 시집을 출간하게 되었다. 그것은 허물을 벗고 날개를 다는 진짜 새로운 탄생이었다. 그런데 정말 힘을 솟게 한 것은 소식을 접한 럭키금성 복지재단에서 점자 프린트가 달린 맹인용 컴퓨터를 기증 한 것이었다. 점역일이 4배나 빨라졌고 한 권만 점역하면 필요한 만큼 프린트로 얼마든지 뽑아낼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 그는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잃은 것보다 남은 것이 더 소중하다는 이 평범한 진리를 우리 모두는 알아야 할 것이다. 오랜만에 기자가 만난 임종욱씨도 어려운 IMF 경제상황에 예외는 아니었다.
재작년 10월 중풍으로 쓰러지신 아버지 대신 살림을 맡은 이후 몹시도 힘겨운 듯했다. 아버지의 약값, 당뇨가 있으신 어머니의 약값, 너무 오래 누워지낸 탓으로 모든 신체기능이 제 기능을 못함으로서 약화된 저항력으로 자주 발생하는 방광염, 그로 인해 고단위의 항생제를 쓰고도 듣지 않아서 일년에 두세번 입원해야 하는 입원비와 약값. 장애는 저주도 불행도 아니었다. 그것은 어떻게 극복해 내느냐에 따라 행복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한집안의 가장으로 힘겨워 보이는 것이 무척 안타까울 따름이다. - 박영희 명예기자 -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