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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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를 빛낸 인물 - 민속학의 개척자 남창(南滄) 손진태(孫晋泰) 선생

  • 1995-11-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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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속학의 개척자요, 사학자(史學者)였던 남창 손진태 선생은 1901년 동래군 사하면 하단리에서 태어나 어린시절 부모를 여의고 구포 할머니댁에서 성장하였는데 9세때(1909) 구포의 사립구명학교에 입학하였다.
호를 남창(南滄)으로 썼는데 그 연유는 조선시대 조세(租稅)곡식을 저장하던 남창이 있던 구포와의 인연으로 붙였던 것이다.
뛰어난 두뇌를 바탕으로 12세때(1912) 서울 중동학교에 입학하여 15, 6세때 졸업하였고 만주에 다녀온 후 구포의 할머니댁으로 돌아와 있다가 19세(1919)때 구포장터에서 일어났던 독립만세운동의 주동자로서 징역 4개월의 옥고를 치렀던 기록이 남아있다. 20세를 넘어서자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 사학과에 입학, 27세(1927)때 수료하였다.
그 당시 식민지 지배하에서의 역사학은 자유로운 연구가 어려워 민속학 쪽으로 선회하여 우리나라의 설화, 민담(民譚), 신화등에 대한 많은 연구와 답사를 통해 한국민속학계의 선구자적인 업적을 남겼다.
33세(1933)때 연희전문 강사, 34세(1934)때 보성전문 강사, 도서관장을 역임하였고 해방이후 문교부 편수국장, 차관을 거쳐 49세(1949)때 서울대 사범대학장, 문리대학장으로 있다가 50세(1950)에 6.25 전쟁이 일어나자 납북되어 소식이 끊겨 버렸다.
구포의 연동에는 남창 선생이 납북된 이후 한분뿐인 할머니가 홀로 손자를 기다리며 살았던 옛집이 남아있다.
남창 손진태선생은 민속학을 민속사회학, 종교민속학적 토대위에서 민속학을 독자적인 과학으로 인식하고 정면 접근함으로써 민속학 연구의 수준을 끌어 올렸다.
연구의 대상을 민간신앙, 무속, 생활민속, 세시풍속, 통과의례, 제도, 전설등으로 확대했으며 방법론에서는 한국기층문화의 본질을 파헤치기 위해 문화사적 방법에 바탕을 두고 역사적, 인류학적, 사회학적, 고고학적 방법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였다.
또한 다른 민족의 민속에까지 시야를 넓힘으로써 비교민속학적인 측면에 도달했으며 문헌적, 이론적인 관심에 국한되지않고 현장자료의 수집에까지 관심을 확대하여 민속학의 실증적인 면모를 보여 줌으로써 1930년대 민속학 정립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민속학 연구는 한국문화의 세계성을 입증하려는 작업이었으며 과거의 일본문화가 조선으로부터 항상 받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식민지 지배의 허구성을 논증하려 했다.
8·15해방이후 본래의 관심이었던 한국역사를 신민족주의사관에 입각하여 체계화 하였다.
남창선생의 한국민속과 역사에 대한 연구는 우리 민족의 주체적인 발전과정을 체계화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