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이동

향 토 문 화 기 행 ⑬ 봉화를 올렸던 계명봉

  • 2001-06-26 00:00:00
  • admin
  • 조회수 : 1227

금정산 가운데 가장 역사적인 유래가 있는 봉우리가 계명봉(鷄鳴峰)이다.
계명봉에는 옛날 봉화(烽火)를 올렸던 봉수대(烽燧臺)의 유적과 범어삼기(梵魚三奇)와 금정팔경(金井八景)에 나오는 계명암(鷄鳴庵)이 자리잡고 있어 더욱 많이 알려진 산이다
계명봉은 범어사의 동쪽에 삼각형으로 솟아 있는 가파른 산으로 높이는 해발 601.5m이다

계명봉의 지명유래
계명봉(鷄鳴峰)은 글자 뜻데로 ‘닭울음 소리'에서 유래 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시대 의상(義湘)대사가 계명봉에서 절터를 찾던 중 한 밤중에 난데없이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 이곳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닭울음은 새벽을 알리는 소리이다
계명(鷄鳴)이란 이름은 날이 새는 동쪽으로서 새롭게 하루가 시작되는 것을 닭이 운다는 뜻으로 해석하여 지어졌다고 할 수 있다

봉수대(烽燧臺)의 유적
계명봉은 봉수대(烽燧臺)의 유적이 있어 널리 알려져 왔다.
봉수(烽燧)는 지난날 군사적인 통신 수단으로 설치되었다
높은 산 위에 봉화(烽火)를 올리는 시설을 설치하여 밤에는 횃불을 올리고 낮에는 연기를 피워 올려 적의 침략 등 나라에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부산지역에는 옛날 7개소의 봉수대가 있었다고 한다.
황령산(荒嶺山), 간비오산(干飛烏山), 응봉(鷹峰), 구봉(龜峰), 오해야항(吾海也項) 석성(石城) 봉수대와 계명산 봉수대가 그것이다.
부산의 다른 봉수대는 적의 침략을 알리는 연변(沿邊)봉수를 맡아 그 상황을 알려오면 계명산 봉수대는 그것을 받아 양산(梁山)의 원적산(圓寂山) 봉수대로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의 내지(內地) 봉수대였다
계명봉의 낮은 연봉에 위치한 이 봉수대는 그 위치가 동서남북 4방으로 틔어 있어 봉화를 올리는데 가장 적절한 곳이다
현재 계명산 봉수대의 유적지는 부산시에서 옛날 봉화를 올리던 시설을 복원해 놓았다

범어3기와 금정8경에 나오는 계명암
계명봉의 약 500m 높이에 위치한 계명암(鷄鳴庵)의 전설이 깃든 자웅석계(雌雄石鷄) 암석이 있다
바로 암탉과 수탉의 모습을 한 이 바위가 범어3기(梵魚三奇)중의 하나였다. 계명암의 오른쪽 언덕에 자리한 이 자웅석계 바위는 암탉의 원형은 없어지고 수탉의 모습만 남아있다.
이 자웅석계(雌雄石鷄)가 계명봉과 계명암의 지명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리고 계명암은 계명봉의 명성을 대변해 주는 존재로서 금정8경(金井八景)의 하나인 계명추월(鷄鳴秋月)이 이곳에서 유래한다
범어사 입구 어산교에서 오른쪽 계곡을 따라 울창한 숲길을 오르면 갈수록 급경사 산길에 접어들게 되고 마지막 가파른 오솔길을 치달아 오르면 계명암이 자리잡고 있다
이 암자에 올라서 보면 부산시가지는 물론이요, 멀리 동해 바다가 한눈에 펼쳐 보인다.
이렇게 빼어난 절경지에서 가을 달빛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신선이 된 느낌이리라.
이처럼 계명봉은 지난날 계명산 봉수대로서 역사적 기록이 전해 오는 곳이요, 계명암이 있어 전설이 깃든 자웅석계(雌雄石鷄) 암석과 계명추월(鷄鳴秋月)의 절경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