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이동

6. 내가 참가한 마라톤대회

  • 2001-06-26 00:00:00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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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후 달려본 적이 언제였던가
요즘 달리기가 유행이라는 얘기를 듣기는 들었으나, 실상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달리리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5월 20일 다대포해수욕장, 넓고 넓은 다대포 백사장과 인근 도로까지 수천명의 사람들이 곳곳에서 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경쾌하게 뛰고 있는 젊은 친구, 유연성 체조로 준비하고 있는 어르신, 이리저리 놀듯 달리는 꼬맹이들, 음료와 떡 파는 아주머니까지…
오늘 달리기 종목은 5km, 10km, 21km 3종. 누구는 21km, 42km도 달리는데 나는 어느 정도 달릴 수 있을까? 평상시 나름대로 한 건강 관리가 효과는 있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5km 선상에서 출발하였다.
출발 준비!
다대포 앞 바다를 향하여 수천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른다. 나의 마음도 바다처럼 넓고 탁트이는 듯하여 함께 고함을 지른다.
야----!
시원하고 짜게 불어오는 바다 바람, 너도 나도 구분없이 모두 함께, 빠름도 느림도 상관없이 그냥 좋을대로 달리기는 시작되었다. 비록 자원봉사자의 손을 잡고 뛰기는 하지만, 실명 후 마음껏 달려본 적이 그 언제였던가?
약간은 감동적인 기분과 함께 별 힘들지 않게 달리기는 계속되었다. 가족 전체가 함께 나란히 달리는 모습, 정답게 이야기해가며 달리는 연인같아 보이는 모습들, 벌써 힘들어하며 터덜 터덜 걷고 있는 모습들, 혼자서 독백하며 달리는 모습, 응원하고 사진 찍는 모습 등등 각양각색의 풍경들을 배경으로 하여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어느 새 2.5km의 반환점
‘이 정도라면 5km 완주는 무난하겠구나! 하하하, 평상시 운동의 효과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군! 후후후, 다음 대회는 속도 chip을 부착하고 10km 달려야지! 히히히'
근데 이상하다.
반환점을 돌아 결승점을 향해 가는 길이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한다. 걷는 사람들의 수도 점점 많아진다. 코로 호흡하는게 곤란하여 나도 모르게 자꾸 입으로 숨을 쉰다. 평상시 약하다고 생각했던 고관절도 점점 통증이 심해진다.
‘아이고 힘들어. 이게 무슨 고생이람!'
‘다음 대회에서 10km는 고사하고 5km도 안 달릴테다. 헉헉'
무의식적으로 달리고 있는 다리에 아무런 감각도 없다. 내가 달리고 있는지 땅이 달리고 있는지 구분도 잘 안된다. 입안은 바싹 바싹 타는데 콧물은 자꾸 나오려고 한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정신없는 상태가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갑자기 자원봉사자가 멈춰 서더니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나도 영문없이 멈춰 섰는데 다리가 없이 공중에 붕 떠 있는 느낌이다. 결승점에 골인했다는데… 아무런 생각도 느낌도 없이 그냥 멍청해져 있을 뿐이다. 그렇게 약 5분 정도 걷다보니 점점 시원해진다. 온몸의 땀이 바람과 만나 나에게 상쾌함을 선물해 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제서야 기쁨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5km를 달렸고 그것도 한번도 쉬지 않고 달린 것이다. 점점 크게 벌어진 나의 입은 다물어 질줄을 모른다. 정말 기뻤다. 처음 만나 함께 달린 자원봉사자가 오랜지기 같았고 다대포 바다가 나의 가슴에 다 담겨진 듯 하였다. ‘이런 종류의 느낌, 기쁨을 도대체 뭐라고 표현할까?'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