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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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토 문 화 기 행 5 - 상계봉 아래 만덕사의 용을산과 비룡산

  • 2000-10-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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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성 (북구 낙동문화원장. 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상학산(上鶴山)의 주봉인 상계봉의 바로 아랫동네인 만덕 사기(萬德 寺基) 마을에는 글 뜻대로 만덕사 절터가 웅장한 석축과 함께 생생하게 남아 있다.
풍수지리상 만덕사의 본당 자리는 제왕(帝王)터임을 용을산과 비룡산은 증명해 준다.

용을산과 용을천
만덕사의 우백호인 용을산(龍乙山)은 용을천을 끼고 만덕사를 속세로부터 완전히 차단시킨 산으로 서쪽 낙동강변을 막아 서 있다.
이곳에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만덕사가 얼마나 큰 절터였는지를 알게 해준다. 산수(山水)가 뛰어난 이곳에 승려를 비롯한 많은 객인(客人)들이 찾아 들었는데 그래서 끼니 때마다 쌀을 씻은 뜨물이 흘러내려 낙동강까지 하얗게 물들였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손님때문에 고충을 겪던 주지스님이 어느날 절을 찾아 온 도사에게 푸념을 늘어놓게 되었다.
그 말을 들은 도사는 “만덕사의 뒤쪽 산 줄기인 용을산 너머로 흐르는 물길을 위에서 막아 절 옆의 대천내들로 흐르게 하면 절에 식객(食客)이 없어 질것이다”고 하더란다.
대천내들은 용호골 상류에 개간되어 있던 밭지대를 말하는데 이곳에 단구(段丘)가 형성되어 있다. 이는 만덕사 뒤 용을산 너머로 흐르던 물을 막아서 절터 옆으로 흐르게 한 흔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도사의 말대로 하였더니 절에는 객(客)이 끊어지고 끝내 절이 망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만덕사의 금당지 서쪽으로 소량의 시냇물이 흘러내리는 개울이 있는데 그 물길따라 농사를 짓던 논이 계단식으로 형성되어 있다.
만덕사의 안산(案山) 비룡산
만덕사의 안산(案山)인 비룡산(飛龍山)은 청룡의 여의주(如意珠)에 해당하는 산이다.
용이 승천하는 형상을 한 이 산은 일명 황제봉, 임금봉이라 하여 만덕사의 본당 자리가 풍수지리상 제왕터임을 보장해주고 있다.
고려사에 나오는 석기 왕자가 머리를 깎고 이곳에 와 있을때 공민왕과의 왕권 문제가 제기되었으며, 그 인연으로 고려가 멸망한 후 왕족들이 제왕터인 만덕사에 피신해 인근 각 지역으로 흩어졌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만덕사는 고려초기에 건립된 국찰(國刹)이었다.
그것을 증명해 주는 유물로는 먼저 「국장생표()」 석주가 있다. 국장생표는 고려시대 왕명이 미치는 곳에 국가에서 하사한 토지의 경계석인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결정적인 증거는 2차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고려시대의 대형 「치미」인 것이다.
치미는 왕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일반 건축물이나 일반 사찰에는 올릴 수 없고 왕족이나 국가 권력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시설에서만 사용하던 것이다.
이처럼 만덕사는 분명히 일반적인 절터가 아닌 것이다. 누구나 와서 보면 알수 있지만 주변의 경관과 「좌청룡 우백호」의 완벽한 풍수지리의 이론이 적용된 절터임이 틀림없는 것이다.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