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이동

시각장애인 김씨의 신사년 나기 8.망막 색소변증

  • 2001-08-27 00:00:00
  • admin
  • 조회수 : 845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받아들이기 어려워

나의 시력 장애는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질환 때문인데, 이 질환은 일정 연령 이후 주변 시력이 상실됨에 따라 시야가 좁아져 단추구멍 정도만 보이다가 나중에는 결국 하나도 보이지 않게 된다.
중심시력이 보이지 않게 되어 도너츠 모양의 시야를 가지다가 결국 실명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여하튼 초기에 야맹증으로 발견할 수 있으며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서서히 진행된다는 특징이 있다. 나도 어릴적부터 야맹증이 발견되었으며 20세 이후 서서히 진행되어 불빛이나 밝고 어두움 정도의 구별을 할 수 있는 현 상태에 이르렀다.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한 초기에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무척이나 힘들었으며 타인은 물론이고 부모 형제 친구들에게도 말하기 싫었다. 종래의 결과가 실감되지 않았고, 외관상 전혀 표시가 나지 않았을 뿐더러 간단한 일상생활은 그런대로 유지되었기 때문이며 무엇보다도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가 생활 속에서 겪는 남모르는 불편함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학교 교내에서 만나는 친구, 선배 심지어 교수님들로부터 먼저 인사할 줄 모른다는 비난으로부터 시작하여 어둑한 coffee shop에 혼자 들어가지 못하여 그 가게 앞에 먼저 도착하여 기다려 만나기로 한 사람이 나타나서야 같이 들어갈 수 있었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불편하므로 저녁 시간전에 반드시 귀가를 서둘러야했고, 소리없이 다가오는 짐수레에 부딪치고도 무조건 내가 미안하다 할 도리 밖에 없었다. 부모님 심부름으로 관공서에 가서는 서류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쩔쩔 매기도 여러번이었으며 버스를 잘못 타서 엉뚱한 장소에도 자주 가 보았다. 주의를 게을리하다가 가로수나 전신주에 부딪쳐, 상처보다는 마음의 쓰라림을 달래노라면 속도 모르는 타인들은 실수에 의한 것인 줄 알고 킬킬대며 웃는다. 그런때의 참담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고통을 겪으면서도 나의 현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무척이나 오랜시간이 걸렸다. 감출 수 있는 만큼 감추고 인내할 수 있는 만큼 참다가 시력이 나빠져서 더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었고, 내가 굳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누가보아도 금방 알 수 있을 만큼 시력이 악화되어서야 체념하는 심정으로 나를 받아들였다. 비록 체념하는 마음이긴 하였지만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필요한 교육을 받아 다른 사람에게도 설명하고 도움을 구할 줄 알게되니 이런 불편과 고통은 믿어지지 않을만큼 감소되었다.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시력이 나빠진 상태지만 오히려 활동하기는 더욱 편안한 심정이 된 것이다. 여기까지 이르기가 왜 그리 어려웠을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나 터부시하는 일반적 경향들이 알게 모르게 어릴적부터 나의 의식에 내재화되어서가 아닐까? 그래서 나의 일반 사회적 의식과 개별적 신체 장애가 갈등을 빚었던 것은 아닐까? 최소한 시각 장애인에 대한 긍정적인 의식이나 관념을 가질 수 있었던 기회나 계기가 없었음은 분명하지 않은가!
현재도 많은 시각장애인 특히 저시력인들은 일상생활의 불편함은 물론 상당한 심리적 고통과 좌절을 겪으면서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고 남에게 숨기려하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사한 좌절들이 비단 시각장애에만 국한되지는 않으리라 여기며 (다양한 영역들-질병, 가난, 장애, 저학력 등등) 따라서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그리고 질적으로 보다 건강한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개인들이 아파하고 힘든 상황에 처하였을 때, 숨기고 감추면서 그야말로 개인적 좌절과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를 포용하고 희망을 제시하여 다시 건강한 일원이 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기획을 마칩니다.

김장민 / 부산맹인복지관 재가복지팀장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