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이동

구민백일장 산문 일반 장원 - 가 계

  • 1998-11-25 00:00:00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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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경 숙 / 만덕3동 13통5반

먹다 남은 시락국을 작은 냄비에 옮겨 담아서는 냉장고 안에 넣는데 문이 닫기지 않는다.
‘뭐가 이렇게 복잡하지?’
생각난 김에 냉장고 속 정리를 해보자 싶었다.
먼저 코드선을 뽑고 냉장실과 냉동실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냉기가 안개처럼 하얗게 밀려 나와서는 얼굴에 훅 끼친다. ‘뭐 먹을것 없나’하고 수시로 냉장고 문을 활짝 열고 안을 살피는 작은 녀석에게
“아이고, 전기세 많이 나오겠다. 냉장고 문은 조금만 열고, 빨리 꺼내고 빨리 닫으라 안 카더나.” 하고 주의 주던 생각이 나서 혼자 슬며시 웃는다. 전선이 뽑혔는데도 계량기가 휙휙 돌아갈 것만 같아 괜히 마음이 바쁘다. 냉장고 아래 위칸에 든 것을 모두 꺼냈다.
냉장실에는 크고 작은 밀폐통이 많이 들어 있고, 윗칸의 냉동실반과 문짝의 칸막이 등 분해될 수 있는 것은 떼내어 깨끗이 씻어 엎어 두고는 냉장고 안과 문짝의 고무파킹등 구석구석 깨끗이 닦고는 마지막으로 한번 더 마른 걸레질을 했다. 들어냈던 것들을 제 자리에 끼우고 다시 플러그를 꽂으니 더워진 내부 식히느라 힘겨운듯이 윙 하는 모터소리가 육중하게 들린다.
다음은 식탁 위와 부엌 바닥에 널려 있는 냉장고에서 나온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비닐봉지 하나를 풀어보니 물러버린 부추의 냄새가 고약하다. 혀를 차며 밀폐통 하나를 열어보니 먹다 남겨둔 반찬에 곰팡이가 하얗다.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얼어버린 두부 반모, 새들새들한 당근, 막 누래지려는 상추, 건더기만 남은 열무김치, 말끔히 먹어 치우지 않고 남아 있는 갖가지 반찬들을 보니 놀랍고 한심했다. 살 때는 하나하나 꼼꼼히 고르고 깎아 달라고 졸라가며 사고서는…. 음식 버리는 것을 큰 죄라 여기시는 돌아가신 할머니 아시면 호통벼락을 맞았을 것이다. 무계획과 게으름 때문에 버리게 된 음식들을 보니 뜨끔한 심정이었다.
김치통과 밑반찬 두어가지 깔끔하게 들어있는 시어머님의 자그마한 냉장고가 생각났다. 어쩌다 어머님댁에서 밥을 먹으면 찌게고 나물이고 너무 맛있어서 상위에 빈그릇만 남던 까닭을 알 것 같다. 계란 하나 파 한뿌리도 사서 묵혀 두지 않고 그때그때 사서 조리하시니 맛있을 수밖에.
‘냉장고가 빌때까지 시장 가지 않기’
부엌에 있는 작은 칠판에 선언하듯 이렇게 써 놓았다. 그리고 건데기만 남은 열무김치 쫑쫑 썰어 된장찌게 끓여서는 열무김치비빔밥 맛있게 해먹었다. 김치 남을 걱정을 했었는데 지난 겨울에 담은 묵은 김치 세 쪽 발견하고는 미루었다.
군내나는 김치가 그런대로 별맛이다. 냉장고가 비어 가는 것을 보는 마음이 너무 개운하고 편하다.
생각해보면 사람이 살아가는데 그렇게 많은 물건이 필요한 것도 아니련만 둘러보면 냉장고 속 뿐만 아니라 옷장이고 신발장이고 너무 복잡하다. 마음속 복잡한 생각과 욕심도 정리해서 비우면 더욱더 편안할텐데…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