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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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구 자연마을 / 구포지역>

  • 2024-04-25 20:24:04
  • 정영미
  • 조회수 : 34

<우리구 자연마을 / 구포지역>

<우리구 자연마을 / 구포지역>

<우리구 자연마을 / 구포지역>

<우리구 자연마을 / 구포지역>
<우리구 자연마을 / 구포지역>
<우리구 자연마을 / 구포지역>
구포‧시랑골‧음정골 등 지명에 담긴 의미
 
◇구포(龜浦) 유래=범방산 한 줄기가 낙동강을 향하여 머리에 돌을 이고 또는 쉬고 있는 모습이 거북이와 같다고 해서 ‘구식진(龜息津)’ 또는 ‘감동진(甘同津)’, ‘구복포(龜伏浦)’라고 하였다.
또 1895년 감동장에서 구포장으로 개칭되면서 구포로 정착되었고, 1914년 동래군 구포면 구포리가 되었다.
1943년 구포읍으로 승격되면서 구포리가 구복동, 구명동, 구남동, 연동, 시장동, 대리동 등으로 분류되고 시랑골, 음정골, 나나리 자연마을이 형성되었다.
그 뒤 1963년에 부산직할시에 편입되면서 부산진구 구포동으로, 또 1978년에 북구 구포동이 되었다.
◇시랑골(侍郞谷) 마을 유래=시랑골은 신라에 멸망한 금관가야의 시랑 벼슬을 한 사람이 피신하여 멀리 김해 땅을 바라보며 나라 잃은 허망함을 달랬다고 한다.
또한 가야 중심 근거지인 분산을 잊지 못해 재를 올린 모분재(慕盆齋), 송우정(送友亭), 소당폭포가 있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구포의 주산인 주지봉 능선 아래 북쪽의 말등고개와 영산이 있고, 강변 쪽은 범방산이 울타리처럼 둘러있어 재물이 풍성한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광복 후 1960년대까지 한옥의 구들돌(溫突)을 생산하여 부산 시내의 수요를 충당했으며 1950년대에는 사상, 구포, 김해의 아스팔트 포장을 위한 자갈이 공급되었다. 현재는 부산과학기술대학 등이 들어서 있다.
◇음정골(陰井谷) 마을 유래=음정골 참새미 약수터는 부친의 피부병을 고치기 위해 가산을 탕진한 뒤 외동딸이 지극 정성으로 빌어 꿈에 약수터를 게시받아 부친의 오랜 피부병을 낫게 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구포 주지봉에서 영산과 말등고개가 있는 이곳을 경계로 하여 동북쪽에 위치한 음정골 참새미의 물로 말을 사육했다고 해서 말등고개라는 지명이 생겨났다.
또한 만덕계수와 대리천이 만나는 샛강지역으로 옛날에는 배가 드나들었으며, 갯가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 일대의 밭과 야산 등에서 하얀 조개껍질 무더기가 발견되어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을 보여주고 있는 등 음정골이 구포의 뿌리로 여겨지고 있다.
김동국 / 낙동문화원 향토사연구소 소장·희망북구 편집위원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