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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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산책 만상

  • 2023-03-07 16:13:29
  • 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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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부랑 할매가 지팡이를 짚으며 앞에 가고 있다. 머리와 지팡이 높이가 꼭 같아서 쌍기역(ㄲ)자가 걸어가는 것 같다.
보도 옆 도로에는 전동 힐체어를 탄 할배가 꼬부랑 할매를 힐끗 쳐다보며 지나간다. 산책로 입구에는 보행용 수레를 끌고 다니며 운동하는 노인들이 많다.
칠십을 훌쩍 넘기고도 보조 기구 없이 산책로를 이렇게 두발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편백숲 가는 길 양지 바른 언덕에는 사람들이 바둑을 두거나 고스톱을 치고 있다.
편백숲에 들어서자 맨발의 아줌마가 뒤뚱뒤뚱 걷는 불도그를 데리고 조심스레 지나간다. 위쪽 산마루에서 “오~쏠레미오, 오~쏠레미오~”하고 발성 연습을 하는 소리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또 뒤에서는 휴대폰 볼륨을 크게 틀고 “고장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를 따라 부르는 사람이 오기에 길을 비켜주었다.
트위스트를 추듯 허리 운동을 하는 기구를 이용하려고 숲속에 있는 기구장에 갔더니 한 아주머니가 그 기구를 오래 사용하고도 내려올 줄을 모른다. 완전 트위스트 춤에 빠져 있다. 약수터에는 근육질의 아저씨가 간이 의자에 앉아서 큰 말통을 대놓고 찔끔찔금 나오는 약수를 받고 있다. 하산길에 있는 먼지털이기 앞에는 하산객 5명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커플 등산복을 입은 중년의 부부가 머리부터 바지 가랑이까지 세세하고 꼼꼼하게 털고 나서 등산화 밑창까지 털고 있다. 마지막에 장갑까지 털고 끝나는 줄 알았는데 서로 돌아가면서 등까지 털어 주고서야 끝을 내었다. 그 상황을 보고 있자니 산책길이나 약수터에 있는 운동기구 등 공용물을 서로 배려하는 기본 에티켓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철호 / 만덕동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