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이동

[독자마당] 오늘은 내일이 되고…

  • 2023-07-10 21:02:58
  • 정영미
  • 조회수 : 596
어느새 올해의 절반이 성큼 다가왔다. 코끝이 찡해질 정도로 추웠던 지난겨울에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여름이 찾아왔다. 거리를 걷다 보면 금세 머리 위를 뜨겁게 달구는 햇빛 때문에 그늘로 피하기 일쑤다.
넘치는 생동감으로 세상 모든 것들에게 생명을 선물해주던 봄과 달리 요즘은 머릿속이 멍할 때가 있다. 정보가 많으면 처리해야 하는 시간도 길어지는 컴퓨터처럼 생각이라는 바다에 깊게 빠질 때면 사소한 말 한 마디조차 내뱉기 어려워진다.
거리를 걷다보면 모두 핸드폰을 꼭 쥔 채 각자의 목적지로 바쁜 걸음을 옮긴다. 길거리에 있는 모두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길거리에 두 발을 붙이고 혼자서 멍하니 서있다. 길을 잃은 듯하다.
하지만 여름의 향기에 취했던 탓일까,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아스팔트에서 일렁이며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에 내 모든 생각까지 얽혔던 탓일까. 제멋대로 여름의 열병이라고 내린 진단 속에서 생각이 뒤섞인다.
이럴 때면 냉기가 채 가시지 않았던 어느 날의 산책이 생각난다.
그날은 몸이 차갑게 식는 게 싫어서 일부러 햇빛이 은은한 오후 2~3시에 집을 나섰다. 에스키모인들은 감정이나 생각이 몸을 무겁게 만들 때 걷기 명상을 한다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하염없이 걸어가는 그 시간은 결국 나에게 있어 일종의 감정 여과기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걷다보니 내 주위를 맴돌던 복합적인 생각이 모두 휘발됐다.
절대 풀리지 않을 것만 같은 생각의 매듭이 타오른다. 고요하다. 기분이 나쁘면 조용히 귓가를 간질이는 바람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걷는다. 그런 방식으로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은 낫겠거니 그런 믿음을 가지면서 오늘을 보낸다.
손민경 / 만덕고등학교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