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이동

고요가 어디로부터 오는가 - 김철희

  • 1997-01-27 00:00:00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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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덕동·자유기고가)
바쁜 일상을 뒤로하고 휴식 겸 때절은 마음을 정돈하기 위해 자그마한 암자를 찾았던 적이 있다.
평소에 길벗처럼 지내던 스님인지라 당신의 서재 한켠을 치우고 나를 맞아주시는 마음이 잘 정돈된 방처럼 정갈함 그대로 내게 스며왔다.
바랑 하나, 옷 한 벌, 그리고 찻물 잘 배인 차도구 몇 점.
등에 지고 온 내 짐이 부끄러워 슬며시 서재 뒷켠에 밀어두고 삼배로 예를 올렸다.
벗으로왔으니 함께 삼배로 맞절 올리자는 그분의 파르스름한 머리가 순간 눈앞을 가득 채우며 우주의 기운으로 감지되어져 옴에 잠깐 눈부심으로 바라보는 한 순간의 무소유…….
이미 여기 온 목적을 맞절 삼배로 만나고 있음이니 더 머물러 찾은들 깨닫고 보면 또 없음이다.
작설차 한 잔 청해 마시며 차향기에 취해서 말이 필요없는 마음이 다만 오고가고 있음이었다.
해는 지고 잔설 내린 대나무잎 스치는 소리가 몹씨 시끄럽게 사각대는 소리에 뜰을 나섰더니 군불을 지피고 돌아오시던 스님께서, “고요가 어디로부터 오는가?” 하고 화두 하나를 던지신다.
고요 속에서의 고요는, 고요하다고 느껴지던 온갖 사물의 소리를 듣고보니 참으로 고요는 일상의 무소유에서 오고있음이니……. 내 사는 곳 장터의 소란함이 마음으로부터의 일렁임조차 없는, 열심히 사는 일에서 그렇게 오고있었다.
산다는 것은 사는 그곳에서 있는 그대로의 비움으로 살아갈 때 스스로의 공덕이 베품으로 가는 나눔 아닐까를 보고 있었다.
움켜잡고 바둥대는 것들, 온갖 집착과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임에 올해는 내 서있는 자리 굳게 뿌리내려서 이 척박한 세상 일회용 인스탄트 아닌 두엄 썩힌 거름으로 일궈내고 싶다.
고여 있는 것들이 흘러 정화되는 자연의 섭리로 하여 어느 누구도 사람이 사는 세상 ‘누’가 되지 않는 스스로의 공덕을 닦아가는 그런 날들이었으면 좋겠다.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