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이동

금정산 금샘에 대하여

  • 1997-04-25 00:00:00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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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군부대로 불쑥 날아온 북구신문, 3월호 신문을 읽어 나가던 중 ‘찾고 싶은 근교산’이란 기사를 보았다.
군 복무 전 산을 좋아하던 나는 가까운 금정산에 자주 올랐었다.
어느 날, TV에서 금정산 “금샘을 살립시다.” 라는 방송을 보고 문득 스친 내 생각은 金井山이라는 金井과 금샘(金泉)의 어원이 같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금샘은 金井山시초이기도 하면서 그곳에 물고기가 살았다는, 그래서 범어사(凡漁寺)의 말이 나온, 잘은 모르지만 그곳이 중요한 곳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나는 친구와 같이 금정산 금샘을 찾으러 나섰다. 그곳 안내판에서 금샘이라고 적혀 있는 약도를 보았지만 그 넓은 산을 다 뒤져서 바위 위의 샘을 찾는 것은 사막의 바늘을 찾는 꼴이었다. 네 시간을 찾다가 결국 실패했고, 우리는 소중한 문화유산을 소홀히 하는 부산 당국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서구에 살 때는 구덕산을 자주 찾았었다. 구덕산은 바다를 내려다 보며 고기잡이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소박한 여성의 숨결이 숨어 있는 곳이다.
그에 반해 금정산은 돌산 같은 이미지로 우뚝 솟아 올라 쓰러지지 않는 남자의 강인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남(南)으로 구덕산 어머니가 있고, 북(北)으로 금정산 아버지의 위엄이 있으니 이는 곧 지금껏 부산을 지탱한 말없는 침묵의 힘이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심장부 역할을 한다해도 틀림없을 금샘이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산을 올라 껍데기만으로 만족하는 것이기에 그런 실수를 안겨주는 것이리라. 북구신문 역시 큰 자태만을 자랑할 뿐 금샘에 관한 글은 없었다.
나는 사학자도 문화유산 평론가도 아닌, 그저 부산을 사랑하는 시민일 뿐이다. 그래서 내 생각은 솔직하면서도 올바른 생각이라 믿는다. 내 글이 만인에게 읽혀진다면 그로 끝나는 것이 아닌 소중한 유산을 찾는 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김정율(군인/경기도 파주시 야동동 사서함2호) 2대대 7중대 병장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