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이동

독자마당 - 남 은 희

  • 1998-11-25 00:00:00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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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곡동 98-1 주공아파트 210동608호

빈 자 리

큰 소리로 만세라도 한번 부르고 싶을 정도로 청명하고 좋은 날씨다.
남들은 춥다고들 슬슬 어깨를 움추리는데 내게는 정말 이 계절이 애틋하기까지 하다. 뚱뚱이과에 속하시는 분들이라면 나의 이런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생각된다. 말 그대로 네게 있어 여름은 지옥, 가을·겨울은 천국….
알싸한 아침, 저녁의 기온 탓에 내 기분은 날아갈 것만 같아 가슴이 설레일 정도인데 조금전 걸려온 남편의 전화 목소리엔 힘이 하나도 없다.
저녁이라도 든든히 먹었는지 원…. 그놈의 IMF라는게 뭔지 온 나라 전체를 뒤흔들더니만 급기야 우리집 울타리까지도 침범해 왔다.
직장을 경주로 옮기고 요즘 우리는 본의 아니게 주말 부부로 지낸다.
다행히 옮겨간 회사가 바쁘게 잘 돌아간다니 곧 이사를 하게되면 옛날처럼 네 식구 함께 살수 있겠지만, 합치기 전까지는 늘 걱정스럽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세끼 밥은 꼭꼭 챙겨 먹어야 하는 양반이라 여태껏 특별한 보약 없이도 건강히 잘 지내 왔건만. 혼자 자취생활하는 요즘엔 아침밥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방은 따뜻한지, 용돈은 떨어지지 않았는지…. 여러가지가 걱정이다.
계절에 혼돈이 온다. 지금이 가을인지 겨울인지‥. 계절의 흐름을 느낄 여유조차 없는 남편의 깡마른 얼굴을 생각하면 이렇게 따끈한 커피 한잔을 마시는 여유조차 사치가 아닌가 싶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또 곧 봄이 오듯이 모든 일이 계절의 흐름만큼이나 막힘없이 다 잘 풀리리라 믿고 싶다.
이사 얘기를 어른들께 꺼냈더니 어머님께서 어디가서 물어보았다며 올해는 절대 집 옮길 생각하지 말라신다. 나야 괜찮지만 남편이 앞으로 몇달 더 건강히 잘 버텨줘야 할텐데….
가정의 소중함과 남편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요즘 새삼 느끼게 되고, 여태껏 잘 해왔다고는 생각하지만 어려운 시기이니만큼 더더욱 내조를 잘 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집에서 애들 탈없이 잘 키우는게 돈 버는거야” 하며 내 어깨를 툭툭 치는 남편이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애들이랑 아파트 광장에 떨어진 나뭇잎을 주우며 아빠 오시면 보여드리기로 했다.
하늘을 한번 쳐다보려는데 알싸-한 바람이 몸을 세차게 훑고 지나간다. 눈물이 나려 했다. 막내 녀석이 오늘만 벌서 몇번째 내게 묻는다.
“엄마! 오늘 아빠 오시는 날이에요?”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