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이동

산에서 만난 아름다운 모습

  • 2001-11-28 00:00:00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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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완연합니다.
벅찬 가슴으로 새 해돋이를 맞은지가 엊그제 같은데 덩그라니 달려있는 한 장의 달력이 빈 마음을 더욱 공허하게 합니다.
자기 관리를 천천히 하자는 좌우명 아래 취미삼아 등산을 시작한지도 벌써 15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산에서 겸손과 넉넉함을 배우면서 생활에 활력을 보태어 갑니다.
산을 오를 때 너무 서두르다 보면 으레히 넘어지거나 다치기 마련입니다. 대자연이 베푸는 아늑한 휴식을 조금씩 만끽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산을 올라야 합니다. 힘들고 긴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반드시 거기에는 조그만 쉼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훨씬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오늘은 아침 등산을 갔다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일흔이 훨씬 지난 할아버지 세 분이 하얀 장갑을 끼고 산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다니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순간 나도 모르게 움찔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할아버지 힘드시지 않으세요?”
저는 허리를 굽혀 조용히 할아버지를 바라 보았습니다.
“아니야. 소일거리라도 있으니 밥맛도 좋고 반나절을 이렇게 다니니 하루가 지루하지 않지. 독감 이 와도 끄떡없어. 새댁은 쓰레기 아무데나 버리지 않지?”
연륜만큼이나 골 깊게 패인 할아버지의 주름잡힌 얼굴이 내 가슴에 찡하게 와 닿았습니다.
할아버지의 그 잔잔한 노년의 모습이 편안함을 초월해 의연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무겁지 않다고 굳이 이러지 않아도 된다고 만류하시는 할아버지의 쓰레기 봉지를 빼앗다시피해 산을 내려 오는데 왜 그렇게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슴은 콩콩 뛰는지… 부끄러웠습니다.
자연을 오염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은 늘상 가졌지만 버려진 쓰레기를 주워온다는 생각은 아직 한번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무언가에 쫓기듯이 허둥지둥 산 아래를 한참 내려와서야 할아버지의 예쁜 마음이 담긴 비닐봉지를 열어 보았습니다.
빈 소주병, 쓰다버린 꼬마건전지, 과자 봉지 과일 껍질등…
그것을 소중한 보물마냥 손에 꼬옥 쥐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빛고운 단풍잎보다 더 곱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시는 그분들을 보면서 저는 오늘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편안한 휴식을 주는 것은 물론 먼훗날 우리가 안길곳도 자연의 넉넉한 품속이 아니겠습니까?
모두가 소중하게 가꾸고 사랑할 때 우리의 마음은 울창한 숲 만큼이나 풍요롭고 윤택해지리라 생각됩니다. 우리 함께 더불어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제발 쓰레기 함부로 버리지 마시고 건조한 날씨에 산불조심 또 조심 합시다. 내일은 보온병에다 따뜻한 차라도 끓여 할아버지를 기다려야겠네요.
할아버지! 항상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십시오.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김명숙 / 만덕2동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