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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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더불어 사는 사회(최화수)

  • 2000-12-26 00:00:00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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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화 수
국제신문 수석논설위원

세밑 거리 풍경이 몹시 썰렁하다. 추위는 몰려오는데 경제사정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다시 IMF가 오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한다. 아니, IMF 때보다 살기가 더 힘들다고 말하기도 한다. 꿈과 희망으로 맞이한 새 천년 그 첫해가 어쩌다 이렇게 막을 내리려는지, 기가 막힌다.
지금은 외환위기가 닥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실제 체감경기는 더욱 악화돼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실의와 좌절의 수렁으로 떨어지고 있다. 도대체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다.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가치가 전도되고, 신뢰가 떨어져 어떤 기대도 갖기 어려운 때문이다.
정녕 안타까운 일은 가족해체, 가정붕괴의 비극이 의외로 많은데 있다. 가장이 거리를 떠돌고, 어머니가 가출하여 아이들만 버려져 있다. 가족은 희망과 용기의 불씨를 지피는 원동력이다. 가정의 울타리 만큼 든든한 것도 없다. 가정 붕괴가 늘면 사회의 지탱 능력도 상실된다.
사회를 지탱하는 주춧돌이 가정이다. 건전한 가정과 가정이 연대하여 건강한 사회를 구성하는 것이다. 국가경영의 한 지표도 그 구성원인 가정을 원만하게 유지하는데 있다. 한 가정의 파탄은 그 가정의 비극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가족 해체의 상황이 사회의 불행으로 이어진다.
이웃의 불행을 남의 일로 보아넘겨서 안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인간사회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가다보면 낙오하는 사람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를 버려두고 떠날수는 없는 일이다. 힘이 부치는 사람을 앞에서 당겨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함께 가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 낙오자들이 너무나 많다. 힘들고 어려운 것은 모두가 한결같이 느끼고 있다. 그럴수록 나보다 못한 이웃, 더 불행한 이웃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마음을 베풀어야 한다. 그 사랑의 손길이 이웃을 살리고 나아가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나라 살림을 어떻게 살았기에 민초들이 어둡고 황량한 벌판에 내몰렸는가 하고 생각하면 탄식과 분노가 일 법하다. 하지만 탄식하고 분노한다고 불우한 이웃의 처지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가족해체, 가정파탄의 비극만은 우리들이 이웃 사랑으로 막아주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십시일반으로 상부상조하는 전통 미덕을 지켜왔다. 담장 너머로 호박떡을 주고받았던 따뜻한 마음을 이제 와서 저버릴수는 없는 문제다. 불우이웃에 작은 바람막이라도 되어 주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작지만 큰 온정의 불길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으로 번져나가야 할 때다.

최종수정일2020-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