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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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누가 왕자의 혀를 잘랐는가 지난 6월 24일 구포초등학교 강당에서 극단 동화(대표 전경은)의 ‘누가 왕자의 혀를 잘랐는가’ 연극 공연이 열렸다. 무대공연의 활성화와 주민의 문화혜택을 위해 북구청에서 올해 총 5편의 공연을 계획했으며 이후 3편의 연극 공연이 더 준비되어 있다. 2000.07.25 조회수 : 885
- 북구에도 문화센터가 개설되었다 덕천동에 본점을 두고 있는 부산2상호신용금고가 지난 1일부터 문화센터를 개설, 고려수지침과 생활꽃꽃이 노래교실 등 주부들을 위한 강좌를 매주 1차례씩 마련하고 글쓰기 신문활용교육, 음악교실 등 어린이와 유아를 위한 강좌도 별도로 운영한다. 성인들을 위해 부부가 함께 볼만한 최근 극장상영작을 중심으로 무료영화상영도 할 예정이다. 오는 8월 30일 오전 10시30분에는 청학동 이정석 선생님을 모시고 자녀교육에 대한 무료 특강'이 있다. 문의 : 부산신용금고문화센터 ☎ 937-3900 2000.08.25 조회수 : 1008
- 제6회 구민독서 경진대회 개최 9월 30일까지 작품 제출, 10월 심사 11월 시상북구청은 독서를 통한 구민정서 함양과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기 이하여 9월 독서의 달을 맞아 제6회 구민독서 경진대회'를 개최한다. 북구 거주 주민으로 참가를 희망하는 사람은 일반 교양도서나 각 동 새마을 문고에 비치된 도서를 읽고 200자 원고지 10장 이내로 독후감을 작성, 오는 9월 30일까지 북구청 문화정보과에 제출(우편가능)하면 된다. 그리고 반드시 원고지를 사용하여야 하며, 원고지 첫장에는 주소, 성명, 주민등록번호만 기재하고 2장부터 제목을 적고 두줄을 띄어서 작성하되 끝 페이지에는 출판사와 저자 등을 기록하여야 한다. 작품심사는 10월, 시상은 11월에 있을 예정이다. 문의 : 문화정보과 ☎ 309-4062 2000.08.25 조회수 : 1068
- 한사랑서당 대한민국서예대전 12명 입상 98년 이어 전국규모 두 번째 수상, 큰 성과한사랑 서당(훈장 김대곤)이 이번에 결실을 맺었다. 지난 6월 치러진 2000 대한민국서예대전에서 서당 회원 12명이 입상하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 8월 5일 예술의 전당에서 시상식을 가졌는데, 수장자는 한문해서체 입선에 안덕호, 어재섭, 박정자, 남영순, 한문행서체 입선에 박경자, 방필임, 김소순, 김덕남이며, 한문해서체 장려상에 이영애 이덕순 한문초서체 특선 전병호, 문인화 특선 김대곤 등 12명이다. 이번 대전 입상은 지난 96년 4월 문을 연 이후 98년 국제서화예술대전에 회원 12명이 입상한데 이어 두 번째이며, 한 서당 회원이 전국규모 대전에서 12명이 수상한 것은 큰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서당 자치회 어재섭 회장은 다른 동 사람들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며 사군자와 전통예절, 교양강조, 생활미술 등 다른 서당에서 배울 수 없는 과목을 다양하게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서당에서 7년째 훈장직을 맡고 있는 김대곤씨는 현재 낙동문화예술인 협회 회장직도 겸하고 있으며, 교육에 대한 열정이 높아 교양 자료를 따로 만들고, 건전가곡집을 비롯해 건강문집, 미술특강자료집 달마도상, 명가필보 등 그동안 모은 자료를 4권의 책으로 엮였다. 한편, 이번 입상에 격려하는 의미로 북구청에서는 문화유적 생산시설 견학을 제공하며, 회원들은 오는 27일 김해국립박물관과 덕산정수장, 삼량진 양수발전소등을 둘러볼 예정이다. 2000.08.25 조회수 : 2023
- 가야골에 이는 댄스 스포츠 열풍-주민자치센타 만덕3동사무소 3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힘겹게 오르다보니 퀵·퀵·슬로우·슬로우..." 무슨 소린가하고 가만히 문을 열어본다. 여기는 다름아닌 만덕3동 주민복지공간 댄스스포츠교실 수업중이다. 70명이 넘는 주부들이 30도를 넘는 삼복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면 어김없이 이 교실로 모여든다.최근 각종 메스컴을 통해서 더 많이 알려진 댄스스포츠는, 각종 문화센터의 가장 인기있는 강좌가 되었으며 2006년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정식 스포츠종목으로 채택될 예정이다. 각 대학에서도 댄스학과가 생기고 있는 추세로 불건전한 춤문화에서 건전한 여가활용의 기능으로 점차 대중화되고 있다. 댄스스포츠란 볼륨댄스 혹은 스포츠댄스의 새이름으로 왈츠, 탱고, 슬로우폭스트롯트, 퀵스텝 같은 모던댄스와 자이브, 룸바, 차차차, 삼바, 파소도블레와 같은 라틴댄스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춤이란 나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중요한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비단 젊은이들만이 향유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배우는 엄마들이 너무 재미있어하고 열성적이다. 기본적으로 자세가 교정되고 유연성도 좋아지며 굉장한 운동효과가 난다. 이 강좌를 계기로 춤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으면 하는 바램이다."라고 강사 홍기호씨는 쏟아지는 땀에도 불구하고 열정의 목소리가 차츰 높아지고 있다.얼마나 운동이 되는지 몰라요. 내생활의 활력소가 되는 것 같아요. 매주 수요일이 기다려질 정도입니다. 박자와 스텝이 엉키면서 다소 어렵다 생각은 들지만 너무너무 신나고 재미있습니다."라고 주민 선계숙(48.만덕3동)씨는 댄스스포츠강좌에 대한 관심을 이렇게 표현한다. 이렇듯 가야골에 이는 댄스스포츠열풍인 만큼이나, 배우는 이들의 춤에 대한 건전한 의식전환이 우선되어야겠고 수준높은 강사진의 배출로 폭넓은 여가문화로써 아울러 지역이나 직장단위의 공간확보로 단일성으로 끝나는 유행이 아니라 건전한 레포츠로 자리매김이 되었으면 한다.김미양 명예기자 2000.08.25 조회수 : 1041
- 배워봅시다 - 칵테일 칵테일이란 술에 술을 섞거나 술에 과즙, 탄산음료를 섞어서 만든 혼합음료를 말하며, 술을 넣지 않은 칵테일도 있다.유래는 정확한 설이 없으나, 한가지를 소개하자면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칸베체라는 항구의 한 술집에서 한 소년이 껍질을 벗긴 나무 막대로 드락스라고 하는 혼합음료를 만들고 있었다. 당시 영국사람들은 스트레이트로만 마셨으므로 신기하게 보여 그게 무어냐고 물었더니 소년은 자기가 사용하는 나무막대를 묻는 것으로 알고 닭꼬리처럼 생겨서 그냥 콜라데기죠'라고 대답했다. 이 말은 스페인어로 닭꼬리란 뜻이었으므로 영어로 바꾸어 코크테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데 여기서 파생되어 지금의 칵테일로 발음하게 되었다는 유래를 갖고 있다.여기서는 비알콜성으로 여름에 갈증해소에도 좋고, 음료수로 즐길수 있는 레모네이드와 레몬 스콰시 최근유행하는 진을 베이스로 한 싱가폴슬링Ⅱ진과 시중에서 흔히 구할수 있는 크림 드 멘트 소재의 어라운 더월드와 민트 프라페를 소개한다. 더운 저녁 하루 일과 후의 피로를 칵테일의 색과 맛으로 씻어 내리는것도 좋을 듯하다.<레모네이드>·재료 : 레몬즙 (1/2개의 분량), 설탕시럽 30ml, 생수 적당량·만들기: 쉐이크에 얼음과 레몬즙, 설탕시럽을 넣고 흔든 다음 얼음과 함께 잔에 옮겨 붓고 생수를 8할 정도 채워낸다. 즙을 짠 레몬을 보기 좋게 썰어서 장식하거나 스트로를 꽂는다.<레몬 스콰시>·재료: 레몬즙(1/2개의 분량), 설탕시럼 30ml, 소다수 적당량·만들기: 레모네이드와 같은 방법으로 해서 생수대신 소다수로 잔을 채운다. <싱가폴 슬링 Ⅱ>·재료: 드라이진 30ml, 체리 브랜디 15ml, 오렌지 주스 60ml, 레몬주스 15ml, 그레나딘 시럽15ml·만들기: 재료와 얼음을 쉐이크에 넣고 잘 흔든 후 잔에 옮겨 붓는다. 레몬과 키위 체리와 스트로로 장식한다. <어라운 더 월드 AROUND THE WORLD>·재료: 드라이진 30ml, 그림 드 멘트 그린 1Tsp(티스푼), 파인애플 주스 30ml·만들기: 쉐이크에 얼음과 재료를 넣고 흔들어서 따른다.<민트 프라페 MINT FRAPPE>·재료: 크림 드 멘트 그린 30ml,·만들기: 먼저 잔에 잘게 부순 얼음을 넣고 천천히 크림 드 멘트를 붓는다. 짧은 스트로, 박하잎과 체리로 장식한다.김미정 명예기자 2000.08.25 조회수 : 1088
- 우리고장의 문화유산을 찾아서 17 - 화명동 화명동 화잠(華岑)마을과 대밭골 호투장(虎鬪場)화명동(華明洞 화잠(華岑)마을은 상학산(上鶴山) 북쪽 정상 베틀굴에서 큰 골 작은 골을 끼고 수반천이 흘러내리는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 함박봉과 이어지는 산 아래의 마을이다. 남쪽으로 수정마을과 경계를 하고 북쪽으로 대천마을과 접해있는 화잠마을의 원 지명은 와석(臥石)이다.조선시대 기록에 의하면 양산군 좌이면 와석리로 나와 있으나 근세에 화잠으로 지명을 바꾼 마을이다. 와석(臥石)이란 지명은 돌이 누워있는 동네라는 뜻이라서 동네의 주산(主山)인 화산(華山)의 묏부리(峯)란 뜻의 화잠(華岑)으로 고친 것이다.와석마을은 화명의 중심 동네로서 예로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현 북부산변전소 아래 화명정수장 남동쪽 뒷등 일대에서 발견되고 있다.주거단지로 개발 되고 있는이곳은 현재의 마을에서 500여미터 위쪽 산 아래쪽으로서 건설장비가 밀어 붙이는 현장에서 분청사기, 백자 등 도자기 조각과 기와 조각들이 대량으로 나타나고 있다.그리고 화명성당 뒤쪽 논이 있는 곳에 200년 된 당산나무가 있다가 말라죽었는데 이를 보더라도 이 일대가 옛 마을터임이 증명되고 있다.상학산 베틀굴의 미륵불상학산(上鶴山) 정상의 북쪽 암벽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두곳의 암굴(岩窟)이 있는데 이곳을 베틀굴이라고 부른다.암굴 속에는 부처 형상의 바위가 모셔져 있는데 이 부처가 바로 미륵(彌勒)신앙에서 생겨난 미륵불이다.이곳에는 할머니 한분이 미륵불과 함께 암굴 속에서 30년이 넘도록 수도생활을 해 왔는데 얼마전에 운명하였다고 한다. 이곳 상학산 쪽에서 흘러내리는 수반천(水盤川)은 안창 바위골 뒷골물을 합하여 와석마을 뒤쪽을 지나 용동골로 흘러내려 대천천과 합류하고 있다.그리고 함박봉 아래 흥아타이어가 있던 곳과 와석 본 동네사이로 작은 개천이 흘러내리는데 이곳에 당집이 있어 당집골이라고 부른다.와석마을의 배경에는 함박봉아래 너덜지대인 채이들겅이 있고 동네에서 관리하던 야산(野山)이 있다.서당에서 관리하고 서당산과 동네 토박이인 임씨, 류씨, 양씨 문중산이 있는 재등이 있고 옛날 농사를 짓던 두레 모임에서 소유한 농천산이 있다. 그리고 사립화명학교가 있었던 곳이 학교등인데 현재의 우신아파트자리이다.흥아공업공장이 있던 곳의 아래에는 옛날 뱀이 많았던 배암골이란 골짜기가 있고 북부산 변전소 뒤에는 영장등이라는 언덕이 있다.뒤쪽 깊은 골짜기를 대밭골이라고 하는데 이곳에는 옛날 호랑이가 나왔다고 한다.대밭골 입구에는 동네사람들이 나무를하러가면서 쉬어가던 아리랑 고개가 있다.천국부(千國富)가 살았던 마을와석마을의 철길과 도랑사이에는 조선시대 배를 가지고 소금장사를 해서 큰 부자가 되었던 천국부(千國富)의 집이 있었다.이곳에는 장터껄이 있는데 천국부 한 사람의 재력으로 장(場)이 섰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만큼 와석마을은 천국부의 집과 그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한 마을을 형성했다고 할만큼 큰 부자였다고 한다.그래서 국부(國富)라는 이름이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천국부는 이곳에 엄청나게 큰집을 새로 지었는데 그 뒤 어떤 연유에서인지 망해버렸다고 한다. 지금도 와석마을에는 천국부의 집터가 있고 그 후손들은 사상쪽으로 이주해 갔다고 한다.사립화명학교 설립의 역사와석마을의 학교등에서 1908년 민족학교인 사립화명학교(私立華明學校)가 설립되었다.화명학교는 전통적인 민족사상을 고취하고 항일(抗日)정신을 일깨우기 위하여 동네 유지들이 뜻을 모아 설립했던 학교이다.이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윤경, 임봉래, 양봉근 세분이 구포장터에서 일어났던 3·1독립 만세운동의 주역을 맡았다.그만큼 화명동은 애국지사들을 많이 배출했는데 일제시대 항일운동 지사들이 자금을 구하기 위하여 찾아들 정도로 독립자금을 내 놓는 성의와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도 정평이 나 있었다.장우석(張禹錫)선생 기념비와석마을에는 새로운 양옥들이 계속 들어섰는데 동네어귀에 소나무와 비석이 어우러져 있는 소공원같은 공터가 아직도 남아있다.이곳에는 화명출신의 선각자였던 장우석(張禹錫)선생의 공덕을 기리는 기념비가 서 있다. 옛날 대천 아랫들인 백포원(白浦園)벌판을 보호하기 위해 대천천 물을 직선으로 흐르도록 모래둑을 쌓았는데 이 둑을 쌓아 보존하는데 항상 앞장서서 재정적인 해결책을 이끌어 주었던 장우석 선생의 공덕을 후세에 길이 남기기 위하여 1930년 10월에 백포원 들판에서 농사를 짓던 지주와 소작인들이 기념비를 세우게 된 것이다. 장우석 선생은 1906년 구포사립구명학교를 발족시켜 초대교장을 역임하였고 구포저축주식회사를 설립했으며 1913년 지방에서 최초로 구포은행을 설립했던 향토의 선각자로서 부산의 역사적 인물이다.대밭골 호투장(虎鬪場)의 전설상학산(上鶴山)을 이곳 주민들은 학(鶴)이 남쪽과 북쪽 봉우리를 따라 양 날개를 편 형상이라 쌍학산이라고 한다.상학산의 북쪽 끝 봉우리를 화산(華山)이라고 부른다상학산의 북쪽 봉우리는 가파르고 유수한 충적암이 산 전체를 이루고 있는데 이 산의 8부능선에는 장사가 앉았던 엉덩이 표적과 발자국이 있는 장사바위가 있다.장사바위 아래 돌 언덕(덤)에는 수정돌이 나오는 수정골이 있다. 이처럼 전체가 암반으로 형성된 산을 쳐다보며 살아 온 마을 아래 동네로서 와석(臥石)이란 마을의 지명이 생겨났을 것으로 보인다.화산아래 대밭골 하곡쪽 산골 도랑 옆에 평지가 있는데 이곳이 호투장(虎鬪場)으로 호랑이가 싸우던 곳이다.대밭골은 현재의 북부산 변전소 뒤쪽 대가 많이 자라던 골짜기를 말하는데 이 산골 도랑 옆에 평지에서 호랑이가 싸웠다고 한다. 예로부터 어느 산골이든 주산신령(主山神靈)있다.그러다가 타산(他山)에서 온 난달(떠돌이 호랑이)이 들어오면 본산 신령이 크게 소리를 높여 울어 산 아래 마을사람들에게 난달이 들어왔으니 호환(虎患)을 당하지 말도록 경고를 하고 자신은 난달과 최후의 일전(一戰)을 벌인다.다행히 본산신령이 이기면 난달은 달아나고 만약에 지게되면 3일동안 산천을 떠돌며 슬피울다가 타산(他山)으로 떠난다. 그리고 결투에서 이긴 난달이 이 산을 영유(領有)하여 주산신령이 되는데 당분간 산 아래 주민들은 조심하여야 하고 입산(入山)을 삼가하여야 한다.옛날 산골 주민들이 왕왕 호식(虎食)을 당했다는 소문이 들리면 이는 타산에서 침입한 난달에게 당한 것이다. 주산신령이 강하면 절대로 호환(虎患)이 없었다. 그러므로 주민들은 항시 본산신령에게 지내는 산신제(山神祭)를 정성껏 지냈다. 화명의 대밭골 아래 호투장(虎鬪場)은 본산신령과 난달이 싸웠던 곳으로 이야기가 전해온다. 1997.07.25 조회수 : 1344
- 우리고장의 문화유산을 찾아서 16 - 구포대리 지신밟기 민속놀이-구포대리 지신밟기 백 이 성(낙동향토문화원장)지신밟기의 유래낙동강(洛東江)의 하류 지역인 부산의 북구 관내에는 동네마다 당산나무가 있고 새해가 되면 정월 대보름날 당산제(堂山祭)를 지내고 있다.당산나무 중에서도 구포(龜浦)의 대리(大里) 마을에 있는 팽나무는 부산·경남 일대에서 가장 오래 되고 큰 나무로서 수령(樹齡) 500년이 훨씬 넘었는데 국가의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구포에는 금정산(金井山)으로 이어 지는 주지봉(蛛蜘峰)이 주산(主山)으로 솟아있는데 이 봉우리 아래 음정골(陰井谷)을 끼고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대리마을이 있다.해마다 정초(正初)가 되면 이곳 구포 대리마을에서는 풍물을 치는 사람이 앞장서서 동네 사람들과 함께 당산 앞에서 지신밟기를 시작하여 가가호호(家家戶戶)를 돌면서 지신 풀이를 하던 풍습이 전해 내려온다.지신밟기는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행해지던 민속놀이로서 잡귀잡신(雜鬼雜神)을 몰아 내고 각 가정의 안가태평(安家太平)과 무병장수(無病長壽), 풍농(豊農), 풍어(豊漁)를 기원하던 동민 전체의 놀이였다.지신밟기는 정초에 액(厄)을 막아야 일년동안의 평안함을 누릴수 있다는 고래(古來)의 토속(土俗)신앙에서 비롯되었다. 지신밟기 풍물패는 부잣집이나, 지난해 농사를 잘 지은 집부터 찾아 가서 대문 안으로 들어가 마당, 대청마루, 부엌, 우물, 소마굿간, 장독간, 칙간등을 돌면서 목청 좋은 선창자(先唱者)의 메김소리에 풍물 소리를 반주삼아 흥겹게 춤추면서 뛰어 놀았다.지신밟기를 하면 주인집에서는 주식(酒食)상을 차려나와 대접하고 곡식이나 돈을 내어 놓으면 다른 집으로 향하였다고 한다.이때 모아진 전곡(錢穀)은 동네를 위한 일이나 불우한 이웃을 돕는데 썼다.지신 밟기는 모든 액(厄)이 소멸되고 한해의 복(福)이 보장되는 것으로 믿어 온 백성들의 기원(祈願)이 담긴 민속놀이라고 할 수 있다.(1) 당산지신풀이 구포 대리당산의 산신과 당산지신 앞에 고사를 지낸 후 지신풀이를 한다. 어리여루 지신아 지신지신 울리자울리자 울리자 당신지신을 울리자대법천하 당산신님 재사 천하 당산신님 :이당산에 왕래한자 재수점지 하여주소당산님의 은덕으로 안가태평 하여주고가는곳마다 정기받아 부귀공명 하여주고조선팔도 다 댕겨도 소원 성취 이루소서일년이라 열두달에 하루같이 넘어가소(2) 우물 (용왕) 지신풀이 당산지신풀이를 하고 내려와 동네 우물터에 당도하여 우물을 다스리는 용왕의 지신풀이를 한다. 어이여루 지신아 용왕지신을 올리자여기가서도 용왕님 저기가서도 용왕님동해바다 용왕님 서해바다 용왕님남해바다 용왕님 북해바다 용왕님 :어이여루 지산아 용왕지신 울려주소잡구잡신은 물알로 만복은 이리로 만복은 이리로 주인양반 잡수소(3) 가정방문 지신풀이 용왕지신풀이를 한 후 가정을 방문한다. ① 대문에서 먼저 대문 앞에서 ‘주인 주인 문 여소 나그네 손님 드간다.’ 하고 소리치면 집 주인은 ‘문 열었다 들오소’ 하면서 대문을 열면 ‘문 열었다 드간다’ 하며 마당에 들어간다. ② 마당놀이 마당에서 풍물패는 풍물을 울리고 잡색들은 춤을 추면서 마당놀이를 벌린다. ③ 성주풀이 마당놀이를 할 동안 가정의 안주인은 대접에다 정화수 한 그릇과 쌀 한그릇에다 초를 꽂아 불을 켜서 작은 상에 얹어놓고 대청위로 가져와 허리를 굽혀 빈다. 이때 상쇠는 성주풀이를 시작하고 풍물패는 풍물을 쳐서 장단을 맞춘다. 성주신(成造神)은 집을 수호하는 신령을 말한다. 성주풀이의 내용에는 대청에서 안방과 각방치장에 이르기까지 대사가 나온다. 어이여루 지신아 성주지신을 울리자 :성주본이 어디메요 성주본이 어디메요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이 본일래라제비봉에 솔씨를 받아 소평대평을 뿌렸더니낮으로는 햇볕보고 밤으로는 이슬맞아타박솔이 되었네 잔솔밭이 되었네소부동이 점점자라 황장목이 되었구나가자스라 가자스라 나무비러 가자스라강원도라 강대목아 둥글박자 박대목아시렁시렁 톱이야 뚜걱뚜걱 짜구야양어깨 울러 매고 소평산을 찾아가자 :이집 집터 잡으려고 조선팔도로 다댕긴다.계룡산을 밟아보니 유점사가 좌정하고지리산을 밟아보니 해인사가 좌정하고무릉산을 밟아보니 미륵사가 좌정하고토함산을 밟아보니 불국사가 좌정하고금정산을 밟아보니 만덕사가 좌정하고주지봉을 내려오니 구포 대리가 생겼구나말등고개를 주름잡고 음정골에 집터 닦아 :조선팔도를 다댕겨도 소원성취 하여주고나갈때는 빈손이요 들올때는 알손이요동서남북을 다댕겨도 만수무강 하옵시고일년이라 열두달에 과년하고도 열석달삼백이라 육십일에 안가태평 하옵시고삼백이라 육십일 하루 아직 같이 넘어가소.잡구잡신 실어모아 자래등에 실어주소 던져주소 던져주소 낙동강물에 던져주소잡구잡신은 물알로 만복을 이리로만복은 이리로 이집성주를 울려주소④ 조왕(부엌) 지신풀이 상쇠가 쇠를 치면서 부엌으로 들어가면 안주인은 비손상을 대청에서 부엌으로 옮겨놓고 허리를 굽혀 절을 하면서 빈다. 그러면 상쇠의 조왕지신풀이가 시작된다. 어이여루 지신아 조왕지신을 울리자울리자 울리자 조왕님도 울리자여기가도 조왕신 저기가도 조왕신이집조왕은 대조왕 팔만대조왕 울리자 :던져주소 던져주소 낙동강물에 던져주소잡구잡신은 물알로 만복은 이리로 일년이라 열두달 과년하고도 열석달 삼백이라 육십일 하루아직(아침) 같이넘어가소⑤ 장독 지신풀이 상쇠가 부엌에서 나와 장독간으로 가면 안주인은 비손상을 장독간의 가에 옮겨 놓고 허리를 굽혀 절을 하며 빈다. 상쇠의 장독 지신풀이가 시작된다. 어이여루 지신아 장독지신을 울리자흰통으로 만든 메주 한해된장 담궈놓고붉은콩으로 만든 메주 꼬추장을 담아보자이집 장을 담으면 꿀맛같이 달아 주고사시장천 날이가도 변함없이 달아주소 :일년치고도 열두달에 장맛좋다고 소문나소잡구잡신은 물알로 만복은 이리로만복은 이리로 이집장맛 변치마소⑥ 소마굿간 지신풀이 상쇠가 소마굿간으로 가면 안주인은 비손상을 소마굿간으로 옮겨 놓고 절을 하며 빈다. 상쇠는 소마굿간 지신풀이를 하게 된다. 어이여루 지신아 지신지신 울리자우미대마를 울리자 청초 말을 울리자 :잡구잡신은 물알로 만복은 이리로만복은 이리로 우마대마를 울리자⑦ 칙간(변소) 지신풀이 상쇠는 소마굿간에서 나와 바로 칙간으로 가면 안주인은 이곳에다 비손상을 옮겨 놓고 빈다. 상쇠는 칙간 지신풀이를 한다. 여루 여루 칙간야, 칙간지신을 울리자구린내도 막아주소, 이질도 막아주소설사도 막아주소, 곽란도 막아주소오뉴월 변소에, 구린내도 막아주소잡귀잡신을 물알로, 만복은 이리 다 오소⑧ 대문 지신풀이 칙간 지신풀이를 끝으로 상쇠는 쇠를 치면서 다시 대문쪽으로 나와 대문을 다스리는 수문 지신풀이를 한다. 여루여루 대문아, 대문지신을 울리자키 큰 도둑 막아 주소, 손 큰 도둑 막아 주소고무 도둑은 막아 주소, 왼갖 도둑 다 막아 주소잡구잡신은 물알로, 만복은 이리 다 오소⑨ 대문 지신풀이가 끝나면 풍물패는 잡색들과 어울려 한바탕 신명나게 놀게된다. 그리고 집주인이 차려 놓은 음식을 먹고 난 뒤 가정에서 사례로 내어놓은 곡식을 지게에 지고 다른 집으로 향한다. 1997.06.25 조회수 : 1194
- 환경의 날 기념 환경부문 글짓기 최우수 당선작 북구청은 제25회 환경의날을 기념하기위해 관내 초·중학교 재학생을 대상으로 환경부문 글짓기 대회를 실시했다. 이번 대회는 관내 18개학교에서 64편의 작품을 응모하여 초등부 및 중등부로 나누어 각각 최우수 1편, 우수 2편, 장려 3편을 선정하고 오는 6월 정례 조례시 시상하기로 했다. 초등부 최우수작은 6월호에 게재합니다. 공기도 돈 주고 사야 하나요? 김 정 운 / 모라여자중학교 2-1한 달 전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 아빠는 산을 좋아하시는 편이어서 보통 사람들보다 등산을 자주 하시는데 그 날은 우리 가족을 모두 데리고 가셨다. 산의 중턱 쯤 올랐을 때 이마에는 땀방울이 보송보송 맺히기 시작했고 점점 숨소리도 거칠어졌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잠깐 쉬어가기로 하고 바위에 걸터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아빠가 갈증이 난다고 하시며 물을 찾으셨다. 집에서 미리 준비해 간 물이 없었기 때문에 아빠는 그냥 산에서 흘러 내려오던 물을 마시려고 하셨다. 그러자 엄마가 아빠를 향해서 “그 물을 어떻게 믿고 마실려고 해요?” 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그 산은 흙을 조금만 파헤쳐 보면 깨진 병 조각이 박혀 있었고, 바위 밑에는 비닐봉지가 묻혀 있는 등 인간이 남긴 발자국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었다. 직접 그런 장면을 보게 된다면 아무도 그 산에서 흘러내려오던 물을 마시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연을 믿지 못하고 의심한다는 것.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옛날 우리 아빠가 내 동생만 했을 적에는 집 앞에 흐르던 개울에서 송사리를 잡으며 놀다가 목이 마르면 아무 거리낌 없이 개울물을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엄마가 사춘기였을 때에는 비가 오면, 뒤에서 잘 생긴 남학생이 우산을 씌워주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우산이 있으면서도 괜히 비를 맞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지금 우리의 현실로써는 불가능한 일이다. 웬만한 개울이나 얕은 강가에서는 송사리는커녕 피라미 새끼 한 마리도 찾아 볼 수가 없다. 그 뿐만이 아니다. 갑자기 소나기라도 내리는 날이면 산성비를 맞고 혹시나 대머리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우산이 없으면 체육복이라도 뒤집어 쓰고는 집으로 뛰어가기가 일쑤이다. 바로 이 모든 일들이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코 앞에 닥친 문제인 것이다. 옛날에는 우리나라를 ‘금수강산’이라 일컬어 왔다고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산이며 강을 둘러보고서는 그런 말을 꺼내기가 무안할 정도이다. 수돗물을 믿지 못해서 값 비싼 생수를 사 먹는 일을 옛날엔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강이나 산으로 소풍을 가면 썩어가는 듯한 쓰레기 냄새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고, 옛날에는 그리도 많았던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 이러한 일들은 우리들의 죄값에 불과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폐수 조금 버린다고 해서 저 넓은 바다가 오염되는 것은 아닐 거야.’ ‘나 하나 쯤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린다고 설마 온 세상이 쓰레기 천국이 되기야 하겠어?’ 하는 몰상식한 생각으로 남몰래, 눈치를 살피며 슬쩍슬쩍 저지른 일들. 그 죄값을 이제서야 톡톡히 치르게 된 것이다. 다가오는 2000년대에는 어쩌면 공기마저도 돈 주고 사서 쓰는 일이 벌어 질지도 모른다. 정말 물 맑고 공기 좋던 우리나라는 영영 자취를 감추고 마는 것일까? 이제는 ‘금수강산’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서 밖에 찾을 수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석유보다도 물을 더 비싸게 사 먹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신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다. 우리에게는 아직 한 가닥의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 남아있는 것이다. 우리의 강산을 맑고 푸르게 보전하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겠지만 마지막 남은 실오라기 한 가닥만을 꼭 붙들어 잡은 채 한 사람 한 사람이 노력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마음 놓고 수돗물을 마실 수 있는 그 날이 오리라 믿으며 이만 글을 마친다. 1997.05.26 조회수 : 1045
- 우리고장의 문화유산을 찾아서⑮ - 화명동 수정 마을 조대(釣臺), 학사대(學士臺)가 있는 화명동 수정 마을백 이 성(낙동향토문화원장)지난 5월 14일 화명동 수정마을에서는 향토비 제막식이 있었다. 마을의 내력 비문에 새겨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수정 (水亭)마을의 내력 (비문)우리 고장은 상학산(上鶴山) 줄기인 함박봉을 배경으로 예로부터 낙동강 물이 안기는 곳으로서 언덕 위에 길손이 쉬어가던 정자나무와 너른 들이 있어 수정원(水亭員)이라는 지명이 생겨났다. 풍수지리상으로 정자가 있던 곳은 상학산 줄기에서 학의 목 부분에 해당되어 수정목이라 하였고 강물이 돌아 흐르던 곳에 선비들이 산천(山川)을 읊었던 학성산의 학사대(學士臺)는 학의 머리부분으로 수정끝이라 부르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용(龍)이 유영(遊泳)하는 형상이라 하여 용수동(龍水洞)으로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마을 남쪽 앞산에서 신석기시대 돌도끼가 발견 되었고 가야시대 옛무덤인 고분군(古墳群)이 발굴되어 우리 고장이 오랜 역사를 간직한 마을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 배움터인 양사재(養士齋),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양수정(養水井), 강변 암벽 위에서 낚시질하던 조대(釣臺) 유적들과 대장골(大莊谷)에 얽힌 전설이 전해오는 유서 깊은 고장인 것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 향토의 옛 모습이 하나 둘씩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음을 볼 때 선조들이 남기신 발자취를 후대에 길이 물려주기 위하여 주민들의 뜻을 모아 수정 마을의 내력을 돌에다 새겨서 남겨 놓는다. 檀紀 4330年 陰 4月 8日 水亭鄕土保存會수정마을의 문화유적(1) 조대(釣臺)수정마을은 예로부터 집터의 명당자리로서 누대승람 등 많은 문화유적들이 있었다.① 적색(赤色)을 띤 암벽(巖壁)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내려오고 있다. 釣臺主人 林景澤조대(釣臺)에서 낚시질 하던 임경택(林景澤)을 새겨놓은 것이다. 이 조대(釣臺)는 조선시대 경상도지(慶尙道誌) 누대승람(樓臺勝覽)편에 <釣臺 林景澤 所築>으로 나와있다. ② 이곳 조대의 암벽 상층부에는 네모난 돌에다 金之觀 이름을 새겨서 올려 놓았다. 이곳을 마을에서는 철도가 돌아가는 모퉁이라서 돌비석의 이름대로 김지관 모랭이라고 부른다. 그 내력은 다음과 같다.수정 마을에 뿌리를 내린 집안 중에서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가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하며 살고 있다. 김지관(金之觀)은 수정 마을에 정착하여 동네를 일군 공적이 있는 인물로서 후세에 그 이름을 남기기 위하여 동네에서 조대(釣臺) 바위 위에 비명(碑銘)을 새겨 올려 놓은 것이라고 한다. 김씨 집안 족보에 의하면 김지관은 지금으로부터 170여년 전의 1802(순조20년) 수정 마을에서 태어났던 인물로 나와있다.(2)학사대(學士臺)수정마을의 철길건너 강변쪽에 학성산(鶴成山)이 솟아 있다. 이 산의 정상이 학사대(學士臺)인데 정상부위의 바위에 학사대 대명(臺名)과 경관(景觀)을 나타내는 글이 새겨져 있다. 學士臺 一心秋月 四面春風 禮曹左郞 金載鎭양산군지(梁山郡誌)의 기록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學士臺在 左耳坊水亭里 後 金載鎭 臺名 曰 「一心秋月 四面春風」(좌이방 수정리 뒤에 있으니 김재진이 대명에 가로되 ‘一心秋月이요, 四面春風이라’ 하였다)여기에 나오는 좧一心 秋月 四面春風좩이란 글은 금정산에 가을 달이 환히 떠오르는 경치와 낙동강과 산을 끼고 4방에 봄바람이 부는 경치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선비의 근본정신인 지조(志操)와 너그러운 기풍(氣風)을 선양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예조좌랑 김재진(禮曹佐郞 金載鎭)은 과거(科擧) 급제자로 양산읍지에 소개되어 있다. 이곳 학사대(學士臺)를 일명 학수대(鶴首臺)라고 하여 풍수지리상 상학산(上鶴山)에서 양 날개를 편 학(鶴)의 머리 부분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데 상학산에서 학이 강으로 날아가는 형상의 지형을 나타내 주고 있다. 앞쪽 수정마을에 학의 목이 되는 곳으로 수정목이라는 지명이 전해 오는데, 일제가 경부선 철도를 놓으면서 풍수상 명당자리인 학의 목 부분을 자르기 위해 철도에 편입 시켜 공사를 벌였는데 이 곳 일대에서 피가 나오듯 붉은 물이 고였다고 전해온다. (3) 양사재(養士齋) 김씨 문중의 재실(齋室)로서 조선시대 서당이 있었다. 지금의 화명중학교 자리에 위치 했는데 이 서당에서 5진사(進士)가 배출 되었다고 한다. (4) 허씨 독 서당(許氏 獨 書堂)수정마을의 허진사댁 첫째 대문 앞 남쪽으로 허씨집안의 서당이 있었는데 이곳의 웃채 3칸집은 서당 훈장(訓長)댁이었고 아랫채 3칸 접집이 서당이었다.(5) 고당할미당산 수정마을 뒤쪽 옛날의 동네 자리로 가는 곳에 있는 마을의 당산이다. 여기에 있는 당산나무인 소나무의 수령(樹齡)이 4~500년 된 것으로 보아 내력이 깊은 고당할미당산으로 보인다. 매년 정월 보름 날 자정(子正)에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6) 포구나무걸 옛날 구포에서 양산으로 가는 길목으로서 경관이 좋았던 이곳에는 500년 이상된 2그루의 포구나무가 있었는데 동네의 정자나무로서 길손들이 쉬어가던 곳이다. 국도확장공사로 밀려나 없어졌다.◎ 수정마을의 전설허섭 진사와 대장골 도적 이야기옛날 화명에서 동래로 가는 길인 대장골의 뒷산은 산적의 본거지였다. 그래서 대장골을 일명 대적골, 대정골이라고 했다. 구한 말 대장골 아랫 동네인 수정 마을에 부자였던 진사(進士)허섭(許攝)이 살고 있었는데 산적들은 매년 1회씩 정례적으로 허진사댁에 와서 양식을 약탈해 갔다. 도적의 연락을 맡은 부하가 허진사댁에 와서 며칠 후에 우리가 올 것이니 곡식을 찧어놓고 준비해 달라고 통보를 하였다.산적들은 지정된 날이 되면 무리를 지어 나타나는데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대문을 잠그고 부녀자를 숨겨 놓고 바깥 출입을 일체 하지 않는다.산적들은 앞산에 와서 징과 꽹과리를 치면서 법석을 떨었다고 한다.허진사댁에서는 마당에 멍석을 깔아 음식을 준비해 놓고 하인을 시켜 산적을 인도하여 불러 들여 대접을 하는 사이에 두목과 허진사는 사랑채에서 대작을 하면서 갖고 갈 물자를 흥정을 하였다.흥정이 끝나고 곡식 등 물자를 내어 주면 그들은 그것을 받아 유유히 사라졌다. 이처럼 산적의 본거지와 가까운 수정마을은 부자인 허진사 한사람의 공덕으로 산적을 막아 내어 마을 사람들의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허섭(許攝)진사는 실존했던 인물로서 조선 철종 임술년(1862년)에 수정마을에서 태어나 고종 갑오년(1894)에 진사(進士)가 되었다.나라가 어지러울 때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많은 일을 했는데 일제 초기인 1914년 구포 구장터에 불이 났을 장터를 재건하기 위한 기금을 모을 때 그 당 시 구포은행이 낸 성금 150원(圓) 보다 더 많은 160원(圓)을 내어 향토를 위한 애착심을 나타내 주고 있다.그리고 독립운동단체에서 은밀히 자금을 모우러 다녔을 때 화명에 오면 반드시 수정마을의 허진사 댁을 찾았고 허진사는 많은 자금을 선뜻 내주는 인물로 추앙받았다고 한다. 1997.05.26 조회수 : 1265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