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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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구 문화·역사 금석문(상) 금곡동편

  • 2023-09-05 17:34:27
  • 정영미
  • 조회수 : 115

우리구 문화·역사 금석문(상) 금곡동편

우리구 문화·역사 금석문(상) 금곡동편
천승호 부부 효심 기리는 정려비 보존
 
이계필·손상일 군수 공덕비
금곡청소년수련원으로 이전
 

금곡 지역에도 효자와 효부, 선정을 베푼 군수를 칭송하는 비석이 남아 있다. 비석에 새겨진 내용 등을 살펴본다.
◇효자 천승호와 열녀 경주이씨 정려비(孝子 千乘昊 烈女 慶州李氏 旌閭碑)=금곡동에 살던 천승호(1817~1866)는 임진왜란 공신 천만리의 후손으로서 7세에 부친을 여의고 홀로 된 모친을 모시고 살았다. 어느 겨울 모친이 중병에 걸려 화사(꽃뱀)를 구해야 낫는다는 말을 듣고 눈물로 찾아 헤매니 하늘이 감동하여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부인 이씨 또한 열녀로서 시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남편이 죽은 후 그 뒤를 따르니 부부의 착한 행실이 세상에 알려져 양산 유림에서 건의하여 정려비를 세웠다. 이 비는 율리마을 입구 도로변에 세워져 있던 것을 금곡중학교 앞에 옮겼다가 현재 금곡청소년수련원 정원으로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
비(碑)에는 ‘효자 증 통훈대부 사헌부 감찰 천공 승호지려 열녀 감찰 천승호 처 증 숙인 경주 이씨 지려 자 치순(孝子 贈 通訓大夫 司憲府 監察 千公 乘昊 之閭 烈女 監察 千乘昊 妻 贈 淑人 慶州 李氏 之閭 子 致淳)과 1872년 11월 16일(고종 9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행군수 이후계필 청덕휼민비(行郡守 李侯啓弼 淸德恤民碑)=이 고장에 선정을 베풀어준 군수의 공덕이 담겨있는 비석으로 광무 6년 임인 삼월(1902년 3월)에 세웠으며 금곡 동원진나루터 언덕 위 고갯길에 있던 것을 금곡청소년수련원으로 옮겼다.
비석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鋪錢亘途 길마다 돈을 깔고(은택을 고루 베풀고) 捐金醫病 재물을 내어 병폐를 고치셨네 劒刷從容 밀린 세금은 말썽 없이 조용히 거두었으며 訟決淸淨 송사를 판결함에 맑고도 깨끗하셨네 孰不蒙恩 어느 누가 은혜를 입지 않으려마는 吾最咸喜 고을 모두가 가장 즐거워하노라. 靡泐靡磨 비석은 부러지지도 갈려지지도 않으리 與郡終始 길이길이 군(郡)과 함께 하리라.
◇행군수 손후상일 휼민선정비(行郡守 孫侯相馹 恤民善政碑)=일본과 교역을 하던 금곡 동원진나루터에 종사하던 참부(站夫)와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푼 군수의 공덕비로 동치 12년 계유 이월 1873년 2월 세웠으며 동원(장어마을) 앞에 있던 것을 금곡청소년수련원으로 옮겼다. 비석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川浦沙陣(삼포사진) 냇가에 모래벌판 펼쳐져 莫我境民(막아경민) 우리 경내 백성들에게 병폐가 되었네 涓廩蠲俵(연름견표) 관곡을 대어 세금을 대신하셨으니 爲政以仁(위정이인) 정사를 폄에 인으로써 하셨다.
김동국 / 희망북구 편집위원

최종수정일2020-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