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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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구 문화·역사 / 금석문(하) 만덕·화명편>

  • 2023-10-26 19:15:30
  • 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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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구 문화·역사 / 금석문(하) 만덕·화명편>

<우리구 문화·역사 / 금석문(하) 만덕·화명편>
임진왜란 공신·물난리 막은 선각자 기려
 
◇증어모장군 훈련원첨정 광주김공지묘(贈禦侮將軍 訓鍊院僉正 廣州金公之墓)=김기 장군의 묘소는 만덕동 만덕역 2번 출구에서 만덕베르빌아파트 옆의 숲속에 위치하고 있다. 김기 장군은임진왜란 때 판관(判官)으로 창의공신(倡義功臣) 24인과 더불어 왜적을 토벌하여 공을 세웠다. 조정에서 공적을 표창하여 선공감부정가(繕工監副正加)의 벼슬과 어모장군(禦侮將軍)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의 벼슬을 내렸다. 죽음에 미쳐 만덕(萬德) 구암(九岩) 자좌원(子坐原)에 장사지내고 부인 연안 이씨(延安李氏) 여명의 딸과 합장했다.
◇임진전쟁 공신 김기장군 묘갈명=按工公諱琦 字和卿 貫廣州 (中略)
公生得忠義根天 英邁絶人 當壬亂 人皆離散 公以判官 終不背官 與倡義功臣二十四人 竝力討賊公亦同功之一也 自嘲家旌寶褒 贈繕工監副正加 贈禦侮將軍 訓鍊院僉正 聖朝崇報至矣及歿萬德九岩子坐原 配延安李氏麗明女合瑩 (後略)
문화재관리국에서 발행한 문화유적총람에 의하면 임진전쟁 당시에 동래 출신의 의병으로 죽은 뒤에 김기 장군의 묘가 만덕동에 있고 묘비에 공적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동래지방 의병활동에 관한 <충렬사지 忠烈祠誌> 부록 별전공신록에 기록되어있으며, 24인 공신 중의 한사람이다. 김기의 기록을 보면 임진란 이후 본부인(동래부 사람)이 모두 궤산(潰散)할 때 끝내 관(官)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되어있다.
◇고 장우석기념비(故 張禹錫記念碑)=장우석(1871~1924)은 화명대천 출신으로 구포라는 소도시를 개화에 눈을 뜨게 한 선각자이다. 화명대천의 들판이 비만 오면 냇물이 넘쳐 물난리를 겪었는데 용당으로 흐르던 대천 냇물을 낙동강으로 바로 흐를 수 있도록 주민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는데 큰 공이 있었다. 이를 고맙게 여긴 지주와 소작인들이 1930년 10월 선생의 공덕을 기려 세운 기념비가 화명 와석소공원에 있다.
비석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白浦一野 백포벌판에 新堰成峨 새로이 둑을 쌓아 높이 이루었네
直通曲川 굽은 내 곧게 통하게 하고
圓坊拒河 둥근 제방으로 강물을 막으셨네
賴誰竣役 누구의 힘입어 공사를 마쳤는가 公力居多 공의 힘이 대부분이었네
同務五人 함께 힘쓴 이 다섯이었으나 始終靡他 시종 딴 뜻 없으셨네

김동국 / 낙동문화화원 향토사연구소 소장·희망북구 편집위원

최종수정일2020-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