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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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기행⑪ - 금정산의 주봉(主峰) 고당봉

  • 2001-04-27 00:00:00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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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상에 나타나 있는 금정산(金井山)의 주봉(主峰)인 고당봉은 해발 801.5m의 높이로 형상(形象) 자체부터 주변의 산을 진압하듯 우뚝 솟아 있다. 멀리서 보면 그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나 보이는 고당봉은 분명 천지신명(天地神明)이 만들어 놓은 걸작품이라 할 수 있다.
고당봉의 정상에 오르다 보면 금정산의 주봉으로서 위용(偉容)을 갖추기 위해 산성과 연결되어 쌓아올린 성곽(城郭)이나 성채(城砦)의 본영(本營)처럼 보이는 것이다.
고당봉 정상에는 풀 한포기 나지 않는 바위 덩어리들로 얽혀 있다.
고모당(姑母堂)과 용호굴(龍虎窟)까지 암반으로 되어있고 그 아래쪽에 용왕샘이 있어 신비한 샘물이 솟아 나고 있다.
이 암봉(岩峰)에 올라 서면 부산항(釜山港)은 물론 낙동강이 바다와 만나는 하구(河口) 지역이 한눈에 들어 온다.
고당봉은 이처럼 금정산의 제일 높은 봉우리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부르는 이름은 고당봉, 고단봉, 고담봉 등 7~8개에 이를만큼 다양하다.
그 중에서 고당봉이 가장 널리 불려진 이름이다. 고당봉의 내력이 담긴 한자어로 ‘姑堂峰’과 ‘高幢峰’ 두 가지가 채택 대상이 되어 논의를 거듭한 끝에 ‘할미 고(姑)’ ‘집 당(堂)’의 이름이 당국에 의해 결정된바 있다.
우리나라의 모든 산에는 산신(山神)이 있고 고려때까지 내려오는 모든 산신은 여신(女神)이므로 姑堂峰이 옳다는 것이었다.
고당(姑堂)의 ‘姑’는 넓은 의미에서 ‘시어미’와 ‘시고모’라는 뜻이 아니라 ‘할미’나 ‘어미’라는 뜻이 담겨 있는데 예로부터 생산과 풍요를 안겨주는 여성신인 것이다.
실제 고당봉에는 고모영신(姑母靈神)을 모시는 당집이 자리잡고 있다. 이 당집의 창건 유래는 500여년전 범어사에 있던 밀양 박씨 화주보살의 유언에 의해 건립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절에서는 해마다 두차례에 걸쳐 당제(堂祭)를 올리고 있다.
그리고 고모당(姑母堂)과 그 주변의 용호굴(龍虎窟) 바위, 용왕수(龍王水) 샘터에는 무속인과 보살들이 일년내내 찾아와 치성(致誠)을 올리는 곳으로 선불(仙佛)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고당봉(姑堂峰)은 이러한 내력을 안고 있어 그 이름값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높을 고(高)’‘깃발당(幢)’ 高幢峰을 주장한 사학자는 대가람 범어사를 품고 있는 금정산이 불교와의 인연이 깊음을 강조하며 금정팔경(金井八景)에 나오는 고당귀운(高幢歸雲)을 먼저 제시하였다.
그리고 범어사 창건기에 “고당(高幢)의 주령은 일산의 영(靈)을 진(鎭)하여 제불(諸佛)의 도량을 스스로 지었다”는 기록을 근거로 들었다.
원래 사찰의 깃발은 절 입구에 당간지주(幢竿支柱)를 세워 내걸었으나 고당봉과 금샘(金井)바위, 그리고 범어사가 지형상 일직선상에 놓여 있어 불가(佛家)에서는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하는 불교의 상징적인 깃발을 세우는 존재로서 고당봉(高幢峰)을 지칭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는 불교에서 파생된 ‘高幢’의 지명이 먼저 등장하고 있으나, 봉우리 자체의 내력에 의하면 ‘姑堂’에 더 많은 무게가 실리고 있어 일단 姑堂峰으로 결정되었다.
부산시민의 정신적 귀의처(歸依處)로서의 고당봉은 지난 세월속에 담겨진 숱한 사연과 내력을 안고 말없이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다.

백 이 성(부산북구 낙동문화원장, 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최종수정일2020-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