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이동

우리고장을 빛낸 인물

  • 1995-09-25 00:00:00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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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투사 우산(右山) 윤현진(尹顯振)선생 윤현진선생은 구포의 명문집안 출신으로 조선말 관직을 역임한 윤필은씨의 차남으로 1892년에 태어났다. 7세부터 한학(漢學)을 배웠고 15세때(1907) 구포사립구명학교(구포국민학교전신)에 입학, 제1회로 졸업하였고, 20세때(1912) 일본으로 건너가 명치대학 법대에 입학하였다. 여기서 조선유학생 총무를 맡아 유학생 회장 신익희, 위원 백남훈, 장덕수씨등과 교우를 가졌다. 22세때(1914) 명치대학을 중퇴하여 귀국, 이후 1918년까지 양산, 구포, 부산을 무대로 활약하면서 백산 안희제 선생의 백산상회 설립에 참여하였고 독립운동자금조달과 국내외 기밀 연락을 맡아서 활약 하였다. 27세때(1919)인 3·1운동 당시 경남은행 마산지점장으로 있다가 일본관헌의 수색과 감시가 심해지자 3월말경 동지들과 함께 고국을 떠나 4월초에 상해에 도착, 상해 임시정부수립에 참여하여 김 구선생, 신익희선생과 함께 임시의정회 내무위원으로 피선 되었고, 경상도 자금모금위원역을 맡았으며 이어서 7월에 재무위원장이 되었다가 8월 직제개편으로 재무차장(차관급)이 되어 재정실무를 담담하였다. 28세때(1920) 김 구선생 등과 의용단을 창단하였고 29세때(1921)과로가 겹쳐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으니, 장례는 임시정부의 국장(國葬)으로 치루어 졌다. 향토출신으로서 상해임시정부의 재정을 조달하기 위해 몸을 돌보지 않고 동분서주 하다가 숨져가신 윤현진선생의 유해는 광복 50주년을 맞은 금년 8월 국내로 봉송(奉送)되어 대전국립묘지에 안장 되었다.

최종수정일2020-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