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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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정선기)

  • 1997-06-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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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선 기 / 시인,부산일보통일문제연구소장

『무엇이 이토록 서성이게 하는가/그대, 얼룩진 반도의 상흔을 안고/오늘도 자유의 하늘을 떠도는가//향토에 피어나는 애절한 충혼/불처럼 활활 뜨겁기만 한데/그대, 민족의 허리를 두 동강 낸/처절한 피의 역사를 기억하는가//온 밤을 뜬눈으로 지새며/그대, 조국의 편안한 잠을 위하여/먼바다 지켜 서서 울고 있는가』
<졸시 『무엇이 그대를 서성이게 하는가-대청공원충혼탑 앞에서』>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조국광복을 위해 순국한 선열과 누란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기 위해 스러져 간 호국영령들에게 뜨거운 가슴으로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린다. 6월 한달 만이라도 호국제단에 기꺼이 몸바친 영령들의 충정에 감사하는 마음과 바른 몸가짐을 갖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광복의 새날을 맞은지 52년, 북한군이 남침을 감행한 6.25가 발발한지 47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일제잔재는 홍수처럼 넘쳐나고 전쟁의 망령은 휴전선을 긴장으로 몰아넣고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후손들의 잘못으로 아직도 선열들이 목숨 바쳐 이룩한 위업을 완수하지 못한 채 허둥댄다. 이 땅의 광복과 평화를 위해 몸바친 호국영령들에게 고개 숙여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6.25전쟁을 잊어서는 안된다. 47년의 세월이 흘렀다 해도 그날의 비극을 지울 수 없다. 전쟁미체험의 젊은 세대는 6.25전쟁을 월남전이나 걸프전과 다를 바 없는 남의 나라 전쟁으로 생각할 정도다. 과거 어느 때 우리나라에 그런 전쟁이 있었다는 단순지식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아직도 전상자가 병상에서 신음하고 있고, 유가족들이 전쟁의 상혼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는데도 6.25는 잊혀져 가는 전쟁이 되었다.
우리는 전쟁의 진실을 알아야 한다. 조국광복의 환희에서 채 깨어나기도 전에 북한에 의해 저질러진 전쟁놀음은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비극을 초래했다. 얼마나 많은 조국의 젊은이들이 피 흘리며 쓰러져 갔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체험과 이산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쳐야 했던가. 그게 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그게 다 누구 때문이었는지, 그리고 지금 그 전쟁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아야 하고 기억해야 한다.
과거역사를 잊는 건 오늘을 사는 사람의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과거없는 오늘이 없으며, 오늘 없는 내일이 없다. 6.25의 상처는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다. 강대국에 의해 분단되었던 동서독은 쉽게 통일이 되었는데 남북한은 무장한 상태로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채 정전상태에 있다. 더구나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이 이판사판으로 언제 도발을 감행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나날을 살아가는 위기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을 비롯한 대다수 국민이 오늘의 분단을 고착화시킨 비극의 6.25를, 그리고 아직도 한반도를 전쟁상태에 묶어두고 있는 6.25를 망각의 강에 띄워 보냈다. 해마다 그날은 어김없이 찾아오건만,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6.25는 흘러간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어 버렸다. 5천년 민족사를 통틀어 최악의 전쟁이라고 할 6.25가 잊혀지기에는 47년의 세월은 짧다. 아직도 슬픔과 고통의 눈물이 마르지도 않았는데, 아직도 남북이 갈라져 있는데, 아직도 정전상태에 있는데, 아직도 공산주의가 휴전선 너머 지척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어찌 6.25를 망각의 뒤안으로 흘러 보낼 수 있단 말인가. 비극의 과거일수록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해 경각의 좌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전쟁을 이야기하면 시대착오로 치부하고, 안보를 거론하면 반민주로 매도하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독재정권시절 「유비무환」이 정권안보에 악용되어 국민이 「북한도발」이니 「한반도 위기설」이니 하는 집권자의 말을 「양치기 소년의 늑대 얘기」로 받아들이게 된 때문이다. 안보를 정권에 이용하는 부류들 때문에 「국가안보」가 「정권안보」라는 이상한 모양으로 변질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까지 「안보」를 불필요한 현상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6.25가 실제상황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상황인식 아래 위기대처능력을 길러야 한다. 따라서 6.25의 참뜻을 새기고 반성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국가와 민족의 자존과 영속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일제치하에서 고통받고 신음할 때 목숨을 바쳐 조국광복을 위해 순국한 선열들이 없었다면, 그리고 북한이 적화통일을 획책하여 도발한 6.25전쟁에서 조국의 아들들의 고귀한 희생이 없었다면, 나아가 투철한 안보의식으로 불철주야 국토방위에 임하는 국군장병이 없다면 자유와 번영을 구가하며 민주-복지국가의 대열에 설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호국보훈의 달」 6월에 새로운 각오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고결한 애국-애족정신을 이어받고 그 뜻을 마음에 새겨 통일의 그 날까지 화합과 단결로 매진해야 할 것이다.

최종수정일2020-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