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이동

시론 - 또 하나 잠못드는 이유

  • 2001-08-27 00:00:00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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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8월 상해를 방문하고 8년만에 다시 “상해"를 찾았다.
이번 중국 방문 일정 중에 제일 관심있게 지켜보고자 한 곳이 바로 상해이기 때문이다.
8년전 김포공항에서 무려 6시간을 대책없이 기다린 후 먼지 뽀얀 예비기를 타고 찾아간 상해의 황푸강 저쪽은 허름한 창고같은 건물 몇 채와 낡고 녹슬은 어구들이 흩어져 있는 한적한 어촌 풍경이었다. 하지만 단 8년 뒤에 외딴 거리에서 다시 바라 본 푸둥 신구는 경이 그 자체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상해의 푸둥을 이렇게 변화시켰던 것일까?
중국 정부가 1990년 4월 개발을 선포한 이후 11년 동안 푸둥에만 6,600건 344억 달러를 투자했는데, 이중 150억 달러가 순수 외자 유치였다. 이렇게 외국 기업들이 푸둥으로 밀려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첫째가 바로 중앙정부의 치밀한 계획과 상해시의 실천력이 어우러진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상해시 당국은 여의도의 180여배(522㎢) 정도인 푸둥지역 전체를 금융무역구(투자쯔이), 수출가공구(진차오), 보세구(와이가오차오), 하이테크 과학단지(창장) 4곳으로 나눠, 금융 첨단 산업이 어우러진 21세기형 첨단 단지로 탈바꿈시킬 정밀계획을 세웠다. 게다가 저장 안후이성 등 상하이 인근에만 고소득층 2억여명의 거대 소비시장이 버티고 있어 평소 군침을 흘리고 있던 다국적 기업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었던 것이다.
또한 상해시가 가지고 있는 지리적 강점 즉 양쯔강을 기점으로 한 물류거점이라는 점과, 더 나아가 양쯔강 생산기지에서 생산된 제품들을 홍콩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6,300㎞ 중국의 젖줄인 장강(양쯔강 본류)을 외국 선사들에게 과감히 열어 외국배가 양쯔강 입구에서 1,500여㎞ 내륙인 충칭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내륙운송업' 허가까지 내주는 과감성 등이 한 몫 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이런 하드웨어적 개방과 맞물려 현장에서 발로 뛰는 공무원들의 열의와 우수성을 들 수 있다. 즉 “융통성있는 도시 관리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상해 공무원들 가운데 대외무역위원회에 속한 외자유치 담당 공무원은 150여명 정도로, 이들은 물론 다른 지역 공무원들보다 2배 이상 나은 대우를 받고 있다. 이런 “인센티브" 제도의 결과에 따라 78년 개혁 개방이후 대학에 들어간 30-40대 초반의 해외유학파들이 유창한 영어를 앞세워 변화의 물고를 트고 있었다.
셋째, 미국반도체 회사인 AMCO가, 푸둥 대외경제무역위원회에 투자승인요청서를 제출한 지 2시간만에 투자허가서를 받고, 기업 등기절차는 1시간만에 끝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가 98년 5월 외국인투자지원센터(KISC)종합상담실을 열어 3년동안 처리한 실적이 단 2건이라는 사실과, 외국인이 초기 투자부터 공장설립까지 보통 1-2년이 걸린다는 사실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절감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조건에 다국적 우량기업들이 중국에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갈 동안 “4-5년 내에 외국투자 유치 기반을 확실하게 구축하지 못한다면 한국 경제는 암울하며, 더 나아가 한국경제의 고립화 공동화가 우려된다"는 경고는 이 뜨거운 열대야의 밤 우리를 잠 못들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류승렬/ 부산정보대학 교수

최종수정일2020-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