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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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구 자연마을 / 금곡지역

  • 2024-01-29 18:09:36
  • 정영미
  • 조회수 : 36

우리구 자연마을 / 금곡지역

우리구 자연마을 / 금곡지역

우리구 자연마을 / 금곡지역

우리구 자연마을 / 금곡지역
우리구 자연마을 / 금곡지역
우리구 자연마을 / 금곡지역
공창·동원·화정은 서울 상경 기착지 역할
 
금곡(金谷)은 금정산 고당봉에서 낙동강으로 뻗은 골짜기가 많아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과 가야시대 쇠를 녹이던 야철지여서 쇠 금(金)자를 붙여서 지명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금곡은 고려에서 조선 임란 이전까지는 낙동강 수로를 이용하여 서울로 상경하던 첫 기착지로 왜(倭)와 교역을 위하여 동원진과 역원(驛院)이 설치된 수참(水站)을 두었다.
그 후 1914년 동래군 구포면 금곡리가 되었을 때 자연마을 공창(公昌), 동원(東院), 화정(花亭), 율리(栗里) 4개 마을이 있었고, 1963년 부산직할시로 편입되면서 금곡동이 되었다.
◇공창(公昌)마을=부산과 양산 호포의 경계에 있던 마을로 조선시대 동원진의 수참에서 근무하던 역리(驛吏)와 역부(驛夫)들이 집단 거주했던 곳이다.
이들은 국가의 명령 전달, 사신 왕래의 영송과 접대, 관수물자 수송, 역마의 보급, 군사방어의 임무를 담당하면서 향촌(鄕村)사회를 발달시켰다.
그리고 동원 수참에 소요되는 술을 조달하기 위하여 마을에서 누룩을 생산하면서 산성마을과 함께 누룩으로 유명하였다.
공창마을에는 함안 조씨, 달성 서씨, 영천 이씨, 진양 강씨 등의 문중이 대를 이어 살아온 터전이다.
◇동원(東院)마을=옛날에는 공창, 동원, 화정 일대를 모두 동원이라고 하였는데 2004년 국도 35호선 확장과 아파트 공사 때 옛 유적들을 발굴 조사하여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복합건물임을 확인하고 유물들을 발굴하였다.
동원 수참은 대일교역의 첫 기착지 역할을 했던 곳이며, 강변 나루터에서 이정표 역할을 하던 500여년 된 당산나무도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사라졌다. 이곳에는 잉어와 장어요리를 파는 주막집이 있었으며 1970년대 부산의 7진미(珍味) 중 하나로 지정되어 1990년대까지 성업하였다.
◇화정(花亭)마을=부산지방조달청과 산제당 주변 마을로 화정산제당 당산 앞에 정자나무와 공동묘지가 있었으며 진달래가 많이 피던 곳이다.
이처럼 꽃과 정자나무가 많았던 곳이라하여 화정이란 지명이 생겼다.
한편 1930년대 부산 영도다리공사에 소요되는 돌을 이곳에서 채석하여 배편으로 실어갔으며, 금곡동 주변의 재건축사업으로 마을 전체가 이주하였다가 2011년부터 아파트 단지가 건립되면서 인구가 늘어났다

김동국 / 낙동문화원 향토사연구소 소장·희망북구 편집위원

최종수정일2020-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