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이동

시론 - 청소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

  • 1998-11-25 00:00:00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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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규명(경혜여고 교장)


지금은 IMF 시대 외국 나들이가 그리 쉬운 노릇이 아니지만, 오래 전 유럽 어느 선진국을 둘러보고 온 친구의 이야기가 이랬었다.
“그 나라에서 온 국민이 힘을 모아 국력 신장에 애쓰는 모습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잠시 여행하는 우리 눈에도 하나부터 열까지 그렇게 진지한 모습일 수 없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어디에 가나 국민 건강을 위한 시설과 활용이 눈에 뜨이고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을 위한 배려는 혀를 내두르게 하였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 나라에는 지하 자원이 무진장 묻혀 있는데도, 당장 그걸 발굴하거나 개발하는 데에는 뜻이 없고, 그 나라의 장래를 짊어지고 나갈 청소년들이 이용할 수 있게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다는 마지막 말은 우리들을 충격 속으로 몰아 넣는다.
그 나라의 경우 모든 국민들이 청소년들의 장래에 국가 경영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 비해 지나친 자기 비하라 할지 모르지만, 우선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는 식으로 긴 안목의 청소년을 위한 참다운 시책과 배려에 소홀한 우리 현실이 부끄럽다.
이럴 때 도산 안창호 선생이 생각난다. 일찍이 선생은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 낙망은 청소년의 죽임이요, 청소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
하기야 도산 선생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옛날 우리가 자라날 때에는 그 힘든 보릿 고개를 겪으면서도 진리 추구며 정의 실현의 의지와 패기만은 청소년 각자가 나름대로 지니고 살았다. 하기야 그건 어른들의 보이지 않는 행동 거지가 자연스럽게 청소년들에게 귀감이 되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청소년들이 나쁜 행동을 저질렀을 때, 이를 어느 어른이 동네가 쩌렁쩌렁하게 꾸짖으면 감히 항변을 하지 못했다. 이는 그만큼 어른 자신의 처신에 부끄러움이 없었다는 증좌이기도 했었다고 해도 과히 틀린 표현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오히려 어른들의 사회에서부터 크고 작은 문제가 비롯되는 것이다. 밥그릇에 섞인 한두 알의 모래는 씹지 않고 들어내 버리면 되지만, 밥그릇 전체가 쉬기 시작한 게 바로 어른들의 사회라는 자탄이 나올 정도임을 다시 한번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 갖고서는 청소년들을 감화시킬 도리가 없다.
나이 어린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말을 통해서 감화되는 게 아니라 어른들의 행동을 통해서 감화된다는 말이 참으로 설득력을 지닌다 하겠다.
앞서의 유럽 선진국처럼 부존 자원이 넉넉하지 못한 처지에 있는 우리로서는 어른 자신들부터 건전한 기풍을 진작시켜 나가 그게 이땅의 청소년들에게 정신적 덕목으로 자리잡게 함으로써, 나라의 장래를 그들의 어깨에 짊어 지우게 하려는 각오가 있어야 하겠다.
아침저녁 어디서든 만나게 되는 청소년들을 바라보면서 문득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보는 것이다.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