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이동

時論 - 맹모(孟母)의 정신으로

  • 1998-02-25 00:00:00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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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재 일(부산광역시 교육위원)

맹자 어머니의 진정 자식을 위하는 정신을 이해한다면 이래선 안 되겠다. 세번 아니라 열번을 이사하는 정신으로, 그들을 과소비라는 유해환경으로부터 보호해 주자.
우리는 입만 벙긋하면 흔히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다시 말해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고사를 들먹인다. 그러면서 교육 환경이 자녀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입히는가 하는가를 교훈 삼는다.
맹자가 어렸을 때 공동 묘지 가까이 살았는데 맹자가 곡소리를 내면서 장사지내는 흉내만 내는 것을 보고 저자 근처로 집을 옮겼더니, 이번에는 물건 파는 흉내를 일삼아 하므로 끝내 서당 근처로 이사를 하였더라는 것이다. 그랬더니 마침내 큰 소리로 글을 읽고 공부를 하는 게 아닌가.
만약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고 공동 묘지 가까이 그대로 살았더라면 맹자는 자라서 요즈음으로 치면 장의사(葬儀社) 같은 걸 차려서 돈을 많이 벌었을지는 몰라도 존경받는 만고의 위인 되었을리는 만무하다. 저자 거리에 눌러 앉았더라도 거상(巨商)은 되었을망정 양의 동서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정신적 영향을 끼치는 사상가가 되지는 못하였으리라.
이쯤에서 우스운 얘기를 하나 해야 하겠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시장 놀이 학습을 하였더란다. 담임 교사는 과제를 내 주고 며칠 뒤 조별 발표를 하도록 해 놓고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이제 만으로 일곱살 밖에 안 되는 코 흘리개들이니까 말이다. 조사 기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런데 그거야말로 한갓 기우에 지나지 않았더란다. 어린이들은 집에서 가지고 온 여러가지 물건을 쌓아 놓고는 괴상한 복장에 손뼉을 쳐가며
“골라 골라 골라”
고 외쳐댄다. 왜 거 있잖은가. 구포 장날 시장에 들어서면 남자가 화장을 하고 유행가까지 불러가며 온 몸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모습 말이다. 덕분에 좀은 충격이야 있었지만 수업 하나만은 멋지게(?) 해냈었더라는 어느 교사의 충격적인 고백이다. 그러고 보니 교육 환경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IMF한파가 전국에 휘몰아치고 있다. 날씨는 풀렸어도 추위를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거리에 나가면 어쩐지 을씨년스럽다는 생각조차 든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우리 자신들이 외국에까지 나가 흥청망청 돈을 써댔던 탓이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지난날이 후회스러울 따름이다.
우리들에게 이런 시련은 오히려 필요악이라는 푸념이 절로 나올 정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라나는 꿈나무들에게 고스란히 치욕을 이대로 물려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데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는 일부 국민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만약 부모가 그런다면 자녀들이 본을 받는 것은 명약관화한 노릇, 어찌 걱정이 아니 될 수 있겠는가.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사재기 현상 같은 게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맹자 어머니의 진정 자식을 위하는 정신을 이해한다면 이래선 안 되겠다. 세번 아니라 열번을 이사하는 정신으로, 그들을 과소비라는 유해환경으로부터 보호해 주자. 낭비 현장 근처에서 그들이 얼씬거리는 것을 그대로 버려두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건 어린 맹자가 공동 묘지 가까이서 장사 지내는 흉내를 방치하는 것보다 더 몹쓸 짓이다.
지금이야말로 건전한 소비가 미덕으로 여겨지는 아니 절약 정신을 바로 피부로 느끼는 그런 곳을 청소년들로 하여금 가까이 가게 해야 한다.예컨대 각급 학교에서 이번에 문을 열었던 ‘경제 생활 실천의 장’ 같은 데 말이다. 맹자가 서당에서 글을 배웠듯이 그들이 거기서 건전한 소비 생활을 몸소 체험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서 쓸만한 넥타이 두 개를 백원에 샀다는 어느 학부모의 얘기 하나가 우리들에게 훈훈한 느낌을 갖게 하고도 남는다. 이게 살아있는 교훈이다.
어느 복지 회관에는 ‘천사의 방’이라는 게 있다고 했다. 정말 천사가 장애아를 돌보는 그런 공간이 아니고, 천원만 주면 제법 괜찮은 외출복 따위를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다시 말해 ‘천원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방’이라는 풀이에 약간은 실소했지만 이 또한 신선한 충격이다. 우리들이 청소년을 사랑한다면 차제에 이런 데에 그들이 스스로 찾아가게 하자.
지금이야말로 이런 정신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우리 모두가 맹자 어머니가 되어 공동 묘지가 아닌 서당을 청소년들에게 찾아 줘야 하는 것이다.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