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이동

시론 - 한해를 보내면서

  • 1998-12-23 00:00:00
  • admin
  • 조회수 : 510


                                         신  진  숙 (부산광역시 교육위원)


세모에 서고 보니 갖가지 상념에 젖는다. 6.25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는 IMF가 아니더라도 참으로 어둡고 을씨년스러운 한해였다는 느낌이 드는 한해였다.
자식의 손가락까지 끊어야만 입에 풀칠을 할 정도로 세상은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다.
보험금을 노리고 두 다리를 절단한 희대의 사건이 연일 신문 방송에 오르내리고 있다.
여름이 채 가기도 전에 전국의 역 대합실에 노숙자가 생겨 겨울나기를 어떻게 할까 걱정이라더니 신문 보도를 보면 그 중 어느 누군가가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모양이다.
앞으로 바깥에 있는 온도계의 수은주가 더 거꾸로 곤두박질치면 여기 저기서 더 많은 동사자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경제 사정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거리에 나가보면 구세군의 자선 남비가 한파를 녹이고 있고, 예년에 비해 턱없이 적다지만 그래도 양로원이나 고아원을 찾는 발길이 영 끊어지지는 않았다는 소식이 우리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만든다.
일선 학교에서 알뜰 시장을 개최하여 100원짜리 헌 물건을 판 돈으로 따뜻한 내의를 사서 양로원의 할아버지, 할머니께 갖다 드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보니 흐뭇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고 보면 결코 이 자리에서 좌절하거나 슬퍼하고만 있을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구태여 거창하게 우리 민족이 어떻다고 들먹이기 전에 각자 스스로가 지난 한해를 반성하는 자세가 있다면 다시 우리는 희망찬 내일을 기약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이럴 때 몇 마디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지난 시절은 다시 오지 아니하며 하루에 새벽이 두 번 닥치지 아니한다. 제때를 맞아 부지런히 힘쓰라. 세월이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이는 도연명의 글 속에 나오는 구절이다. 빨리 지나가는 세월, 다시 오지 아니하는 지난 시절 이것들을 글로 쓰고 시로 읊고 후세 사람들에게 경계한 것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 앞에 우리는 숙연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또한 언필칭 저물어 가는 묵은 해이며 밝아 오는 새해이다.
그러고 보니 그 영겁의 세월 중 찰라에 다름없는 세모(歲暮)이지만 돌이켜 보며 반성하는 마음의 자세는 아주 소중할 것 같다. 세상 사람들이 대부분 내 욕심만 채우면 되고 잘난 것도 나뿐, 아는 것도 나뿐, 일할 줄 아는 사람도 나뿐, 돈도 재물도 내가 차지해야 하고 권력도 내가 차지해야 한단다. 나아가 명예도 내가 차지해야 한다는 생각들이다.
이쯤에서 일화 한 도막.
공자가 노자한테서 꾸지람을 들었다는 얘기가 있다. 노자가 이랬다던가?
“총명한 사람이 그 몸을 망치는 것은 다 남의 허물을 말하기 때문이니 부디 조심해서 남을 허물치 말라”
세모에 지난 한해를 돌이켜 보면서 한번쯤 음미해 볼 만한 교훈으로 생각된다.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남을 탓하지 않아야 한다. 나아가 공을 남에게 돌릴 줄 도 알아야 한다. 양보할 줄 알아야 한다.
나서기를 좋아하는 습관이라면 이를 지양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어려운 시대 서로가 서로를 돕고 지내던 조상들의 미덕이 되살아 날 수 있다.
나아가서 그야말로 더불어 사는 희망찬 새해를 우리 모두 맞을 수 있는 것이다.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