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이동

홍길동은 홍길동인데...

  • 1998-09-25 00:00:00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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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 명 신라대 교수

“안녕하세요? 거기 신라대학교 이승명 교수 연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교수님 계십니까?”
“전데요”
“저는 문학에 취미가 있는 거제3동에 사는 이어진입니다.”
“예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교수님, 다름이 아니고 얼마전 모 방송국의 연속사극 홍길동을 보셨습니까?”
“예 보았습니다.”
“그래, 홍길동이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지던가요?
저희들이 학교에서 배운 홍길동은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지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요.
그래 그토록 천대와 멸시를 받으면서 온갖 고초를 무릅쓰고 이룩한 혁명이 홍길동을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지게 해서야 됩니까?”
“그렇지요 그러니까 그것이 작품의 세계가 아닙니까?
혁명에 성공한 길동을 등용하던지 율도국을 개척하여 보국진흥의 기회를 부여하던지 하여 허균의 원작과 비슷하게 꾸미든지 어떻게 하든지 그것은 오로지 작가의 소관으로 작가 이외는 아무도 관여할수 없는 세계입니다.”
“그렇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말입니다. 혁명에 성공한 길동을.……” 말은 이어졌다.
드라마를 구성한 스텝진이 야속하다느니 방송국이 너무한다느니 푸념은 계속되었는데 현실세계와 작품세계가 다르다는 긴 이야기로 겨우 통화를 끝낼수 있었다.
작가는 조물주이다.
적어도 자기의 작품세계에서는 그러하다.
작중 인물을 어떻게 하든지 성공한 영웅으로 부상시키든지 흉탄에 쓰러지는 비운의 주인공으로 그리든지 전적으로 작가의 소관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작가는 조물주이다.
그래서 독자나 관객은 나름대로의 바람을 작가에 걸면서 더러는 환호하고 더러는 비탄에 빠지면서 작가의 작중세계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독자나 관객을 자기의 작품세계에 끌어들인 작가가 훌륭한 작가로 꼽히는 것도 바로 이 까닭에서다.
그런데 그 전화를 끊고 잠시 나는 생각에 잠겼다.
부질없는 생각인줄 알면서도 말이다.
왜 홍길동을 그쯤에서 마쳤을까?
혁명은 성공했으면서도 반혁명의 보수 세력의 저항에 부딪쳐 정말 그렇게 사라져야 했을까?
생각은 다시 IMF를 맞고 있는 현 시국에 미친다.
IMF시대이니 모든 것을 절약하기 위해 그쯤해서 마치고 나머지는 원작(허균)에 미루어 상상의 나래를 펴게하는 수법일수도 있고, 율도국까지 그려 제2탄의 홍길동을 머금고 있는 신호이기도 하고, 아니면 혹 이 어지러운 시국에 혁명을 소재로한 작품을 더 이상 내어 보내기에 알맞지 않은 남모를 이유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어찌됐던 홍길동은 그쯤해서 끝났는데 난데없는 전화로 잠시 딴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가을을 사색의 계절이라 했는데 아무리 어려운 시국이라도 끝없는 생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은 나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