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이동

우리구 신지식인 ( 2 )

  • 1999-10-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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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유 형

아름다운 건축문화의 산실 명문석재

영원불변하는 석재야말로 건축자재로서는 최고라는 자부심 아래 40년을 오직 외길 인생을 살아온 ‘명문석재’ 조유형(60. 화명동) 사장.

1963년 한양대 건축과 재학 중 아르바이트로 협신대리석에 입사하면서 돌과의 인연을 시작했다.
지금은 모든 시설이 컴퓨터로 자동화되었지만 그때 당시는 도면이 없어 필요한 치수를 마분지로 재어 사용하던 때 석재 도면 개발로 29세의 나이에 석재 업계에 일인자로 부상하게 되었다.
부산대리석 산업을 운영하던 1985년 11월 모든 돌은 착색이 되지 않는다는 통설을 깨고 영원히 변치않는 세계최초 착색대리석을 개발 1987년 9월 22일 미국의 발명특허(제4. 695. 487호)를 얻었다.
당시 일본 오사카시 다이어 스톤(주)에서 착색대리석 개발에 관한 노하우 제공 댓가로 5백만달러(44억 5천만)를 제의해 왔으나 자신의 이익에 얽매이지 않고 고부가가치의 창출로 국가경제에 이바지하고자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건설산업의 건전한 발전 및 국민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986년 건설부 장관상을 받고 제8회 우수 건축자재 전시회에서 최우수 입상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67년 대성석재산업 창업을 시작으로 부산대리석, 창원석재에 이어 현재 명문석재를 운영하고 있다.
명문석재는 김해시 상동면 대감리 15-1에 위치하고 있으며 1,2공장으로 1,400여 평의 규모에 년간 매출액이 20억을 웃돌고 있다. 필요한 기계설비는 자체 제작해 사용하고 있으며 마그네샤 숫돌 개발로 연마, 광택 방수 등 일석삼조의 효과를 얻고 있다.
명문석재에서 생산되는 석재 납골함은 선진 장례문화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첨단석재 가공 장비 도입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석재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조유현 사장님이 이 자리에 서기까지는 무수한 어려움이 따랐다고 한다.
석산개발로 인해 여섯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오직 이 나라 경제발전과 건축의 발전을 위해 혼신 노력한 결과 건축자재 분야의 일인자로 샛별처럼 우뚝섰다.
한 두번도 아닌 여섯번의 실패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주위의 인정과 실패를 성공의 밑 받침으로 삼을 수 있는 의지와 인내 덕분이었다.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편안한 길을 택하지 않고 오직 장인정신으로 기업을 이끌어온 아버지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이 우러난다’는 진심어린 딸의 말에 좌절에 굴하지 않는 기업인의 꼿꼿한 기상이 빛을 발했다.
석재 사업도 3D업종으로 사향길에 접어들고 있단다. 그렇지만 오직 일념으로 건축문화를 꽃 피우겠다는 사장의 굳은 의지가 세계의 모든 건축에 명문석재의 손길이 닿을 수 있으리라.
한국 건축 미래에 오색 영롱한 무지개빛이 스며든다. 한 길을 지켜나가는 집념과 장인 정신이야말로 새 천년을 맞이하는 기업가의 올바른 정신이리라.

배연주 명예기자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