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이동

시론-사람의 『수메』

  • 2000-08-25 00:00:00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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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 우 국제펜클럽 한국 본부 회원

사람은 수메가 깊어야 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써보는 말이다. 수메란 괭이나 호미, 칼, 낫 따위의 자루 속에 들어박히는 뾰족하고 긴 부분을 말한다. 이것이 짧으면 말할 것도 없이 연장의 자루가 쉽게 빠져 버린다. 따라서 일을 하다가도 몇 번이나 손을 다시 봐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수메가 깊어야 한다. 운운은 옛날 시골에서 어른들이 젊은이의 행실을 바로잡기 위해서 버릇처럼 쓰던 격언이다. 사립문에서 한 발만 나가도 젊은이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자취를 감추려 하는 것이다. 안타깝다.
어쨌든 사람이 수메가 깊어야 함은 고금을 통틀어 매한가지인데 세월이 갈수록 모두들 자기를 기점으로 삼으려든다. 아집만 세어진다는 뜻이다. 즉흥적으로 행동하고 너 나 할 것 없이 양보를 모른다. 남이야 자기를 어떻게 평가하든지 안중에 없고 주관을 바로 수메의 잣대로 내세운다.
연장에 수메를 박는 것은 대장간을 지키는 편수의 솜씨에 좌우된다. 풀무를 밟는 것은 누구든 할 수 있지만, 연장에 날을 세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물며 자루에 수메를 깊이 박고 바로 박는 일이랴. 이는 오랜 경력을 쌓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이렇게 만든 연장이라야 제대로 구실을 할 수 있다. 밭을 매다가 도중에 자루가 안 빠진다면 능률이 오를 것이다.
사람에 있어서 수메를 깊게 하는 장인정신은 우선 교육자에게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어떤 공부를 해야 하며, 사람 됨됨이가 어때야 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가르친다. 그게 소위 표면적 교육 과정이요 잠재적 교육 과정이다.
그러나 지금은 바로 가르치기 위하여 매 한번만 들어도 학생이 스승을 112에 신고해서 경찰관이 학교로 들이닥치는 세상이다. 이래서야 수메 깊은 사람이란 백년하청이다.
그래도 수메가 어때야 한다느니 입으로라도 들먹이는 우리들이 기댈 마지막 언덕이 있다. 담배를 꼬나 문 여학생을 보고 고이헌 놈이라며 헛기침이라도 하는 노인들을 눈여겨 보라. 그래도 아직은 이런 녀석들을 혼찌검 하다가 노인이 경찰서에 잡혀 갔다는 소리는 못 들었으니 다행 아닌가? 이 노인들이 사람 수메의 편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노인들과 더불어 토요일 오후마다 보낸 것이 17년 3개월, 900회다. 소리꾼으로 거듭 태어나는 게 소원이라고 강변하며 그분들과 청춘가따위를 불러왔다. 자신의 수메 깊이를 알고 움찔 놀라기도 여러번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죽음의 고비도 몇 번이나 넘나들었다.
이번에 그 동안에 겪은 이런 기막힌 체험을 한 데 묶어 세상에 내어놓은 것이 졸저 새끼 넥타이를 목에다 건 교장이다. 천학비재한 사람의 글이 무슨 설득력이 있으랴만,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적었으니 사회에 해악은 끼치지 않으리라 자위한다. 어쨌든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사람의 수메, 참으로 소중한 덕목이랄 수밖에.

최종수정일2020-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