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호

이동

2001. 3/4분기 주민자치센터 자원봉사자 우수사례

  • 2001-09-27 00:00:00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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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몇시에 문 닫아요?
덕천3동 남영순
안녕하십니까?
저는 문고에서 귀여운 아이들과 즐겁게 지내는 덕천3동 마을문고 지킴이 남영순입니다.
1999년 3월경 문고 개소와 더불어 우리집 아이들과 함께 가끔 책을 빌리러 가곤 했는데 그때는 주로 기증받은 300여권의 헌책이 많았으며 일일이 수작업으로 기록하며 책을 빌려주었는데 항상 웃는 낯으로 수고를 해주시는 자원봉사들의 모습이 참으로 인상깊었습니다.
그러던중 1년전부터 저도 자연스럽게 문고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2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 분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문고와 관련된 일도 어느정도 익숙해져 매주 목요일마다 빠지지 않고 즐겁고 보람된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문고는 부모님이 맞벌이 하시기 때문에 문 닫을 시간까지 놀다가는 아이, 책 빌리러 와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반가워하는 아이, 컴퓨터 게임을 다운받아 친구에게 알려주는 아이, 바람의 나라 레벨이 몇급인지 포트리스2는 어디에서 찾는지 정보를 주고 받는 아이, 친구에게 메일 보내는 아이 등으로 항상 분주하고 활기찹니다.
부산 시내에서 우리 덕천3동 마을문고만큼 신간이 많은 곳은 없을거란 생각입니다. 3개월마다 신간도서 목록을 꼼꼼히 확인하여 200여권 정도의 책을 구입하는데 어느덧 6,500권이 넘는 많은 도서를 비치하게 되었고, 그만큼 이용기회를 많이 제공한다는 자부심을 느낍니다. 대출과 반납 작업을 컴퓨터로 입력할 뿐만 아니라 인터넷도 할 수 있으며, 문고공간도 전보다 훨씬 넓고 깨끗해져 그야말로 카페같은 분위기로 바뀌어져 문고에서 있는 시간은 마냥 즐겁기만 하답니다.
작년에는 우리문고가 운영부문에서 부산시에서는 최우수상을, 전국에서는 장려상도 받았습니다.
또한 우리 문고는 초등학교가 가까이 있어 이용객 80% 이상이 학생입니다. 문고의 행사중 당연 으뜸인 것은 “찾아가는 마을문고”입니다. 문고를 자주 방문할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하여 한달에 한번 800권이 넘는 책들을 묶어서 양천초등학교로 직접 찾아갑니다.
찾아가는 마을문고는 한권의 책이라도 더 읽기 바라는 우리의 마음을 아이들과 나누는 의미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우리 문고의 열렬한 팬이기도 합니다. 3년전 아들이 다독상을, 작년에는 제가 독서왕을, 올해에는 딸까지 합세하여 상반기 독서왕이 되므로서 세명의 가족 모두 독서왕이 되는 기쁨도 있었습니다.
문고에는 학생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꼭 책 두권씩을 빌려가시는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도 계시고, 지난 겨울방학때 빌려간 책을 올 여름방학에 가져와서 대출금지를 해제시켜 달라고 떼 쓰는 아이, 책을 빌려서 잘 읽고는 친구에게 빌려 주었는데 친구가 그만 그 책을 잃어버렸다는 아이, 문고에 도장 찍으려는 듯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오는 아이, 친구따라 강남 간다고 친구를 앞질러 독서왕에 도전하는 아이, 노래교실 때 일찍 오셔서 수험생이 필요한 책을 빌려 가시는 고3 어머니 등 매우 다양한 분들이 오십니다.
이젠 사람들 얼굴만 봐도 오늘 기분이 어떤지 알게 되고, 잘 오던 아이가 며칠 보이지 않으면 걱정이 앞서기도 하는데 아마 문고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시는 분이라면 모두 저와같은 마음일 거란 생각입니다.
가끔씩 기억에 남는 특별한 일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 중 한가지만 소개 할까 합니다.
작년 가을, 그때만 해도 오후 4시까지 문고를 열었는데 막 문을 닫으려는 순간 남학생 한명이 헐레벌떡 와서 물었습니다.
『아줌마, 몇 시에 문 닫아요?』『왜 그러니?』
『자연숙제 해야 하는데요!』
『그래? 그럼 아줌마가 도와줄테니 우리함께 찾아볼래? 문 닫는 거 걱정말고 백과부터 찾아보자』
저도 문을 닫고 집에 가서 저녁을 준비해야 할 바쁜 시간이었지만 저는 아이의 불안해 하는 얼굴을 보고는 거절할 수 없어 함께 책을 찾아 숙제를 도와주며 물었습니다.
『집에 책이 없니?』
『예, 우리집에는 책이 몇 권밖에 없어요』
하는 안타까운 대답을 듣으며 문고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답니다. 그 남학생은 숙제를 끝내고 앞으로 숙제는 문고에 와서 하겠다며 돌아갔는데 정말 그날 이후 우리 문고의 단골손님이 되어 제게 기쁨과 보람을 안겨 주었습니다.
자원봉사를 하다보면 이렇게 가슴 뿌듯한 일도 있지만 속상할 때도 있습니다. 집안의 대소사가 많은 편인데 약속되어 있는 당번날은 왜그리 빨리 오는지요. 그리고 전날까지 멀쩡하던 아이가 하필 당번날 아픈 것인지. 또 같은날 당번으로 정해진 짝지는 나오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왜그리 밀물처럼 밀려드는 것인지 등등
어떤날은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나혼자 자원봉사 한답시고, 이리뛰고 저리뛰어 다니며 바빠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공연히 서글퍼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도 아주 춥거나 비바람 치는날 홀로 문고를 지키고 있는데 궂은 날씨에도 문고를 찾아오는 아이들을 보면 “아! 역시 자원봉사를 잘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답니다.
컴퓨터의 황제 빌 게이츠에게 성공비결이 무엇인가 하고 물어보니 마을에 있는 공공도서관의 덕택이라고 대답을 했답니다. 아직 우리 문고가 도서관 만큼은 거대하지 않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지혜의 지팡이는 찾아가는 사람만이 가져갈 수 있다고 나름대로 생각해 봅니다.
저는 가까운 미래에 훌륭하게 자라나 있을 한명 한명의 아이들에게 매일 정성껏 대하는 겸손한 문고 지킴이로 남고 싶습니다.

최종수정일2020-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