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호

이동

“50여년을 풍물과 함께한 삶”

  • 1997-11-25 00:00:00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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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민속보존회 고문 손 운 택씨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풍물배워
우리고장의 민속놀이를
전국 무대에 펼쳐 보는게 소원


풍물패의 상쇠로서 평생을 살아온 손운택(孫雲澤)씨. 구포지역에서 태동한 낙동민속보존회의 사범으로서, 고문으로서 회원들을 지도하기 시작한것은 80년대말, 즉 1989년도.. 평생 전국을 바람따라 구름따라 떠돌면서 다니다가 부산에 오게 된 것이 80년대 들어서였다.
그리고 1987년도에 구포 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정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당시 북구지역 구민체육대회가 해마다 열리고 있었는데 대회의 가장 신명나는 경기는 우리소리,우리가락을 뽐내는 동 대항 풍물경연대회였다.
시장이 있는 구포1동에 살게 된 손운택씨는 체육대회장에서 구포1동 풍물팀과 만나게 되어 그들을 잠깐 지도해 주었는데 당장 효과를 발휘하여 풍물경연대회 1등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 구포의 젊은이들에게 손운택씨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어 조직된 것이 북구민속보존회.
손운택 선생을 사범으로 모시고 우리 고장의 민속단체가 이렇게 정식 출범한것이 1989년도였다. 그 뒤 우리고장의 전통문화단체인 낙동향토문화원과 보조를 같이하여 회 명칭도 낙동민속보존회로 재출발하였다.
그리고 북구지역 문화축제인 낙동민속제가 1993년 태동되면서 지역 전래의 고유민속인 구포대리 지신밟기, 구포 장타령, 그리고 감동진 별신굿을 재현 하는 등 평생을 쌓아온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였다.
풍물패의 상쇠로서, 구포대리지신밟기의 선소리꾼으로서의 역할을 거침없이 해내는가 하면 구포 장터놀이에서 각설이 차림에 장타령을 구성진 가락으로 뽑으면서 깡통을 두드리며 흥을 내는 모습을 보면 민속인으로서 타고 난 팔자임을 느껴지게 한다.
이처럼 손운택씨는 평생 몸에 베어온 풍물의 가락을 후진들에게 전수시켜 대를 잇게 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낙동민속보존회의 고문으로서 역할을 성심성의껏 해내고 있다.
풍물과 함께 살아온 손운택씨의 태생지는 경북 월성군 안강읍 금계리이다. 해방이 되던해인 1945년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집에서 소달구지를 몰던 큰머슴 김정달씨에게 꽹과리를 배우기 시작하여 전통의 지신밟기 가락과 민요를 익혔다.
그러나 어릴적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계모가 들어오자 큰형과 가출하여 객지를 떠돌게 되었다. 가는곳마다 풍물패를 만들어 상쇠로서 패를 이끌어 17세에 안강 강서에서, 19세에 영일군 기계면에서, 군 입대를 하여 사단에서, 군 제대후 강원도 장성광업소에서, 29세에는 안동군 길암면에서 상쇠잽이로 이름을 날렸고 경주에 돌아와 신라문화제에서 입상하고 강원도 철암선 철도공사장에서도 풍물을 놓지 않았다. 45세에 안동군 길암면에 다시 들어갔다가 3년후 47세때 여동생이 있는 부산으로 오게되었고 부산의 아미농악에도 동참하였다.
1989년 구포와의 인연으로 낙동민속보존회의 사범으로서 우리 고장에 정착하게 된것이다.
13세부터 진갑을 넘긴 오늘까지 50여년을 가는곳마다 풍물과의 인연으로 생의 보람을 느끼고 살아온 상쇠잽이 손운택씨. 이제 그 뿌리를 우리 고장에서 내리고 있는것이다.
우리 고장의 전통 민속놀이인 구포대리 지신밟기가 금년 부산시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획득하면서 손운택씨가 어려운 경제적 여건과 인간적인 갈등속에서도 전통문화를 일깨워왔던 그 순수한 염원이 싹을 틔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고장에 자리잡은지 어언 10여년!
이제 다시 출발하는 마음으로 우리 고장의 전통민속놀이를 전국의 무대에서 재현 해 보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는 손운택씨는 오늘도 바쁜 일정속에 하루를 보내고 있다.

최종수정일2020-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