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호

이동

독 후 감 - <목민심서>를 읽고

  • 1997-11-25 00:00:00
  • admin
  • 조회수 : 874


북구청은 지난 10월 독서의 달을 맞아 독서의 저변확대를 위해 관내 주민을 대상으로 구민독서경진대회를 실시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총 15편의 작품이 응모되었으며 최우수 1편, 우수 2편 장려 4편이 선정해 11월 구 정례조례시 시상했다. (입선작 1편을 소개한다.)


청백리 그대 다산이여 !
<목민심서>를 읽고

“ 시대를 초월하여 실학을 널리 알려 백성들의 생활에 많은 편리함을 주었던 선구자적인 인물됨을 본받아야”

한 순 정 (구포3동)

약용은 연천 군수, 화순 현감을 지낸 청백리 정재순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어머니 윤씨를 여의고 새어머니를 모셨는데, 약용과는 나이 차이가 그리 많지 않은 터였지만 효로 섬겼다. 가난한 관리의 집에 시집온 새어머니도 약용을 은혜로 보살폈고 훗날까지 좋은 벗이되어 주었다. 이처럼 부모에 대한 효를 다함으로써 새어머니의 마음을 감동시킨 좋은 교훈은 낳은정 기른정 가리기 전에 우리가 본받아야할 대목이었다.
새삼스레 아버님과 어머님, 아버지와 엄마가 그리워졌다. ‘그래, 효도하리라’고. 약용의 창동 집에서의 일이다. 문간방에 세들어 살던 목수 천만호는 겨울이면 일이 없어 집안 살림이 아주 어려웠다.
이를 본 약용은 ‘목수일이 없는 때에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하고 궁리끝에 솜타는 기계를 발명하였다. 목화솜이 생활 필수품이면 당시에 솜타는 일은 손질이 많아야 하고 시간도 많이 드는 것이어서 약용의 발명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천만호는 기계를 만들어 팔아서 살림이 넉넉하게 되었고 백성들은 적은 힘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학문을 배우는 것으로 다하지 않고 실생활에 응용함으로써 진정한 학문의 가치를 발한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시대를 초월하여 실학을 널리 알려 백성들의 생활에 많은 편리함을 주었던 선구자적인 인물됨을 본받아야겠다.
약용은 벼슬길에 올라 많은 학문적인 의견을 나누었고 좋은 책을 지어올려 정조임금을 기쁘게 해주었다.
선왕 영조가 탕평책을 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정조임금이 올바른 정치를 위해 중용 정책을 도모하던 어려운 때에, 암행어사의 명을 수행하여 사색당파에 밀려 권력과 재물을 탐하는 탐관오리들을 벌하여 가뜩이나 흉흉해져있던 민심을 잘 수습하여 임금의 총애를 받는 좋은 신하가 되었다. 또한 곡산 부사 시절에도 조세 제도를 바로잡고 백성들을 잘 보살펴서 널리 이름난 목민관이 되었다.
여기에서 나라에는 충성을 다하고 맡은 임무에 소홀함이 없는 관리의 자세에서 나는 많은 교훈을 얻었다. 이시대 관리들이 본받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대목을 읽으며 모든 아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하고 싶었다.
약용은 일찌기 실학을 익혔고, 이벽에게서 서교에 대해 듣고 천주실의를 보게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당파 세력들의 묘략으로 전라도 강진현으로 귀양을가게 되었다. 이 곳에서 오랜 유배생활이 시작되었고, 이때에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등 많은 책도 저술하게 되었다.
이무렵 형 약전도 우이도에 유배되어 있었으나 죄인의 몸으로 형제간의 상봉이 어려웠다. 두사람은 많은 서신을 주고 받으며 형제애를 다졌다. 이 대목에서 약용은 형님께 서신으로 외로움을 달래주었고 형 또한 약용에게 많은 격려를 보냄으로써 가족간의 사랑, 형제간의 믿음을 우리는 두고두고 본받아야할 것이리라. 훗날 이순이 훨씬 넘은 나이에 유배에서 해금이 되었다.
훌륭한 사람은 왜 나쁜 무리들에게 모함을 당해야만 하는지 쓴맛이었다. 누구에게도 적을 만들지 않고 묵묵히 주어진 삶에 불평이 없이 호연지기를 가르쳐 준 약용이었다. 이 책에서 제 일을 스스로 잘하는 사람이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는 일이 없는 사회가 되길 바라며 나도 주어진 나의 삶을 열심히 살아야겠다.

최종수정일2020-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