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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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기행2 - 상학산 상계봉의 문화유적을 찾아서

  • 2000-01-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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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성(북구 낙동문화원장,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망루

상학산(上鶴山)에 오르면 먼저 금정산성(金井山城)의 제1망루(望樓)가 첫 눈에 들어온다.
산성의 망루 중에서 가장 조망(眺望)이 좋은 이곳 봉우리는 학이 양 날개를 벌려 강쪽으로 날아가는 형상을 하고 있는 상학산의 심장부에 위치한다.
망루에 올라서면 낙동강과 부산 앞바다의 풍광을 두루 관망(觀望) 할 수 있다. 이 망루에서 산성(山城)은 남문(南門)쪽으로 굽어 내리고, 동쪽으로 파리봉(파류봉)으로 벋어나가면서 서문(西門)쪽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능선이 성벽으로 이어진다.

베틀굴

상학산의 주봉인 상계봉(上鷄峰) 정상 부위에는 북쪽 화명동 쪽으로 베틀굴이 있고 만덕쪽 암봉(巖峰)에는 석봉암(石鳳庵)암자의 유적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굴 속에 불상 모양의 바위가 좌정해 있는 베틀굴은 미륵(彌勒) 신앙과 가야 불교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 굴 속에 좌정해 있는 석불(石佛)이 바로 미륵보살상이고 그 굴속에서 옛날 가락국의 공주가 베틀을 놓고 베를 짰다고 한다. 강 건너 가락국과 마주한 우리 고장은 가야와 얽힌 이야기도 많이 전해 온다.
가락국의 공주가 망할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이 곳 상계봉 암굴을 찾아와 굴 속의 미륵보살 앞에서 베틀에 베를 짜면서 천일(千日) 기도를 하다 쓰러졌다는 전설이 서린 이 곳이 바로 베틀굴인 것이다.
굴 안에는 부처가 좌정한 모습이지만 상호(相好)가 없다. 그것은 미륵보살이 아직 미륵불이 되어 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굴안에서 베틀을 짜면서 천일기도를 하던 가락국의 공주는 이곳에서 최후를 마쳤다고 한다. 그 뒤 미륵신앙을 믿었던 화랑의 낭도들이 이곳을 찾아 왔다가 공주를 발견했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곳이다.

석봉암

상계봉에 남아 있는 또 하나의 유적중에서 암봉 아래 암자터가 있다. 이곳에는 원래 고려시대 만덕사의 부속 암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1950년대에 이곳의 옛 모습을 복원하기 위하여 세웠던 석봉암(石鳳庵) 절터가 남아있다.
구포에서 30대의 젊은 나이로 한약방을 하면서 명성을 날렸던 김금조(金今祚)씨가 큰 뜻을 세우고 옛 자취를 더듬어 상계봉 정상 부위에 석축을 쌓고 돌계단으로 길을 고루어 사찰 중창 작업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때의 전경도(全景圖)가 전해져 오는데 동래군 구포읍 만덕리(東萊郡 龜浦邑 萬德里)의 주소와 봉우리 이름은 생기봉(生氣峰)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석봉암은 대웅전과 용왕당, 산신각, 칠성각, 종각까지 있었고 입구에 석탑 3기가 있었다. 이처럼 착실히 진행된 중창불사와 함께 미륵보살이 있는 베틀굴 주변에도 정비를 하여 새로운 정토(淨土)를 꿈꾸었으나 1960년초 화재로 인하여 그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이제 상학산 상계봉에 얽힌 옛 자취들은 숱한 전설속에 묻혀 시민의 등산로로서 거쳐가는 유적이 되어 버렸다.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