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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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활균형으로 인간적 사회를 꿈꾼다

  • 2019-05-24 15:56:27
  • 문화체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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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향숙 /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원장

 

한 대선후보의 저녁이 있는 삶이란 슬로건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마구잡이로 흔들어 놓았다. 우리는 쉴 수 있는 저녁 없이 일하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만으로 구분된 사회, 세계최장의 노동시간을 견디는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주52시간 노동이 부분적으로 실현되면서 임금이 줄어든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일과 여가·문화생활·자기개발이 균형 잡힌 사회가 바람직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여성들에게 일과 생활의 균형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직장상사나 동료들 눈치 보지 않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거리낌 없이 누릴 수 있는 법제도적 권리 확보와 그 권리의 이행이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요청이 담겨있다.

여성이 직장의 눈치를 보는 이유가 있다. 부산은 10인 미만 사업체 수가 92.5%이며 종사자는 43.8%이다. 여성은 대체로 이런 소규모 사업체에 고용되어 자신의 고유 업무 외에 소소한 다른 업무와 복합된 일을 할 수밖에 없고 출산과 육아, 돌봄 등으로 자리를 비우는 것이 쉽지 않다. 사회가, 가족이, 남편이 아이를 함께 키우지 않으면 예상되는 결과는 뻔하다. 여성의 경력단절이다.

부산 기혼여성들의 경제활동참가율은 미혼여성들보다 낮고, 부산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보다 30%P 가량 낮다. 전국 기혼여성보다도 7%P 낮다. 여성의 경력이 단절되는 이유야 수없이 많겠지만 출산, 보육, 돌봄으로 인한 경력단절은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90일 출산전후휴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가족돌봄 휴직 등을 통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더욱 확보하려는 일생활균형 정책이 여성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에는 일상에서의 성평등한 역할분담이 전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녀를 같이 키우기 위한 남성의 육아와 가사노동에 대한 적극적 참여, 직장에서의 일에 대한 집중도를 높여 가족·여가생활을 보장하려는 직장 관리자의 지향이 포함되어있다.

이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여성가족부에서 가족친화기업 인증을 통해 직장 내 휴직제도와 유연근무제도를 확산시키고 있고, 고용노동부는 직장 워라밸 정착을 위한 직장컨설팅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은 육아휴직 대체인력을 출산·육아휴직을 떠나는 직원이 있는 사업체에 연계하는 사업과 부산의 일생활균형을 확산하기 위한 추진단 사업을 하고 있다. 특히 우리 여성가족개발원의 사업은 전국적으로도 좋은 모델로 인정받고 있으며 성과도 적지 않다.

여성의 경력단절을 예방하는 정책적 개입이 없다면 청년 여성들은 이런 현실을 어떻게 바라볼까?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경력단절의 이유가 되고, 경력단절이 초래하는 소득감소를 뻔히 보면서 젊은 여성들은 결혼을 선택할리 없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다. 국가가 아무리 저출산 위기라고 떠들어도 국가를 위해 아이를 낳을 수는 없지 않는가? 괜찮은 일자리가 부족해서 스스로의 삶도 책임지기 어려운 상황인데.

성평등은 젊은 여성들에게 미래에 대한 긍정적 전망과 예측가능성을 높여준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가족, 지역공동체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속에서 성평등한 소확행을 누릴 수 있다면 가족은 일차적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북유럽 복지국가와 성평등 지수가 높은 나라는 출산율이 점진적으로 회복된다고 한다. 전통적 성역할 태도에서 성평등한 태도가 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 그동안 지속적으로 출산율이 하락하던 상태가 개선되었다는 것이다. 복지국가는 이미 우리나라도 미래 국가모델로 사회적 합의를 이룬 상태이고 성평등 의식 확산도 저항과 조정을 겪고 있지만 보편적 가치로 뿌리내리게 될 것이다. 사회복지제도가 강화되고 성평등이 생활가치로 정착된다면 우리는 보다 인간적인 사회에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최종수정일2020-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