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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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맨발동무도서관 옆 쌈지공원

  • 2024-03-26 14:32:00
  • 정영미
  • 조회수 : 52

[시론] 맨발동무도서관 옆 쌈지공원

[시론] 맨발동무도서관 옆 쌈지공원
백복주 / 맨발동무 도서관 관장
 
봄바람이 따뜻해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아이들의 웃음소리, 노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아이들이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모여 노는 소리를 듣는 것이 말이다. 그 소리에 자꾸만 창문 곁으로 가서 공원을 내려다보게 된다.
화명2동 맨발동무도서관 옆 쌈지공원에는 긴 미끄럼틀이 있다. 이 미끄럼틀이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도서관이 이곳으로 이사 온 2010년에도 있었으니 적어도 14년이 넘게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요즘 놀이터에서 볼 수 있는 미끄럼틀이 아니고 정말 긴 미끄럼틀이다. 마을 어른들에게 여쭤보니 이곳은 처음부터 경사도가 있는 땅이었기 때문에 여기에 뭘 만들까 생각하다가 만들게 된 게 긴 미끄럼틀이라고 한다.
 
쇠로 된 긴 미끄럼틀은 안전상의 문제가 생겨 철거될 위기에 놓인 적인 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이 구청에 민원을 넣기도 하여 철거의 위기를 넘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미끄럼틀이다. 이 미끄럼틀이 자리잡고 있는 쌈지공원은 역할이 많은 공원이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마을 총회와 장날의 장소가 되기도 하고 영화의 전당에서 찾아와 큰 스크린을 걸고 함께 영화를 보기도 했다. 이렇게 마을 사람들에게 두루두루 사랑받고 있는 공원이었는데 이 공원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미끄럼틀이 길고 멋지긴 한데 잘 미끄러지지 않고, 함께 모여앉을 공간이 부족했고, 총회나 장날이 펼쳐질 비어 있는 공간이 더 필요했다. 이런 고민이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무르익고 있던 찰나에 북구청에서 예산이 투입되었고 주민설명회 날 정말 많은 사람이 참여해서 마을공원에 관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2차로 열린 현장설명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을 사람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이기는 쉽지 않았다. “운동기구가 여러 곳에 있으니 여기는 없어도 된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이곳에 더 다양한 운동기구가 필요하다”는 분도 있었다. 공간을 비워 많은 마을 사람들이 모일 공간이 필요하다는 분도 계셨고, 놀이기구를 더 채워 넣어야 한다는 분도 계셨다.
 
나도 이 논의 과정에 참여했었는데 나의 귀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논란의 이야기로만 들리지는 않았다. 나는 마을 사람들이 마을의 공원을 두고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마을 사람 누구나 공원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꿈, 마을의 모든 아이가 신나게 놀 수 있는 놀이터가 되면 좋겠다는 꿈,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원에 대한 꿈, 이런 꿈들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 이야기를 모아서 실행해 옮겨야 하는 담당 공무원과 설계사의 난감함은 짐작하고도 남지만 고맙게도 내가 느끼기에 두 사람의 태도는 매우 수용적이었다. 그리고 참으로 신기했던 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의견들이 모여진다는 것이다. 서로 설득되기도 하고 이해되기도 하면서 마음이 모이고, 마음이 모이니 의견도 모이게 되는 것이다.
 
우여곡절을 지나 3월에 드디어 쌈지공원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다. 긴 미끄럼틀도 멋진데 아주 넓은 미끄럼틀이 하나 더 생겼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해바라기 하며 이야기를 나눌 커뮤니티 공간도 생겼으며 공간을 나누고 있던 이러저러한 장애물들을 철거해 마을 사람들이 모이고도 남을 공간도 생겼다. 휠체어와 유아차도 자유롭게 오르내릴 수 있게 공원으로 들어가는 길도 정비되었다.
미끄럼틀에는 아기들부터 청소년들까지 모두 시간을 달리하며 논다. 종일 아이들이 있다. 너무 신나서 웃고 떠든다. 만들어놓은 벤치마다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먹거리를 나눈다. 공간이 달라지니 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기가 넘친다. 공원을 내려다보고 있는 내내 세상의 평화가 다 여기에 모여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역의 많은 공원의 모습이 어디에나 비슷한 것은 이런 과정 없이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지역에서 뭔가 새롭게 만들어지게 된다면 관심을 가지자. 함께 더 많이 이야기하자. 그렇게 된다면 지역마다 놀이터가, 공원이, 도서관이 더 새로워지리라 생각된다. 그 지역에 딱 맞는 공유공간으로 탄생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만나자. 세상의 모든 평화가 모인듯한 지역의 공간이 곳곳에 생겨날 수 있도록 말이다.

최종수정일2020-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