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이동

2001년 구민백일장 심사소감

  • 2001-11-28 00:00:00
  • admin
  • 조회수 : 3432

1. 어린이들의 글엔 진실성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진실성이라 하면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꾸며서는 안된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근래에 이르러 수필에서 허구(虛構)를 도입하자는 이야기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심지어는 윤오영의 저 유명한 작품 ‘방망이 깎던 노인’도 허구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초등학교 어린이의 작품에 허구가 비집고 들어간다면 그건 언어도단이다.
다행히 이번 백일장에서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작품엔 그런 현상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신호등을 의인화(擬人化)해서 재미있게 표현한 작품을 한번 보자.
여기서 우리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무한한 상상력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작품에서도 이런 경향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경혜여고 최경진 학생의 ‘꿈’은 우리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완두콩이며 코스모스, 욕심 많은 한 소녀 등을 등장시켜 꿈을 ‘형상화’시켰다 하겠다.
허구가 아니라 상상력이 글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2. 덕천초등학교 박연주 어린이는 무려(?) 14장을 썼는데 한 마디로 말해 놀랍다. 보통 어린이는 남의 글을 배껴 쓰는데도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120분만에 말이다. 그런데 만약 이 어린이가 8장 정도에 이 작품을 빚어냈다면 그야말로 수작(秀作)이 되었을 것이다. 본 것, 한 것, 느낀 것 중에서 느낀 것을 제대로 표현해야 향기로운 글이 된다. 추고(推敲), 다시 말해 글을 다듬고 고치는 과정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3. 일반인들이 많이 참여하였고 작품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다양하고 아름다운 어휘들이 뒤섞이고 함축성 있는 표현이 군데군데서 드러난다. 산문이면서 비유법(比喩法)으로 사물이며 자연 현상을 차원높게 묘사하였다. 문장도 탄탄하고 구성이 매끄럽다는 걸 느꼈다. 북구의 문화 창달을 위해 바람직한 현상이라 하겠다.

4. 다만 주제 문장과 종속 문장을 염두에 두지 않고 쓴 작품이 더러 눈에 띄었다. 예를 들어 ‘진돗개는 용맹스럽다’는 주제 문장이다. 그러면 다시 줄을 바꾸지 않고 ‘진돗개는 산에 가면 움직이는 것부터가 다르다. 코를 벌름거리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는 것이다. 그러다가 이상한 낌새를 차리기 무섭게 수풀 속에서 뛰쳐나가는 짐승을 날쌔게 쫓아간다. 상대가 산돼지라 치자. 진돗개는 목줄부터 물고 늘어진다.’ 이렇게 써야 단락도 제대로 잡히고 글이 혼란스럽지 않은 것이다. 문장마다 줄을 바꾸는 사례는 이번에도 많았다.

1. 시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요컨대 산문을 줄만 바꾸고 끊어쓰면 극 시가 되는 줄 아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시를 연이나 행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산문처럼 붙여 써 보았을 때 제대로 문맥이 통한다면 그건 시가 아니다 라는 말이 있다. 운문(시)은 더 절제를 요한다 그야말로 필요없는 군더더기가 끼어들 여지가 없어야 한다. 무 자르듯이 토씨도 생략한다. 산문보다 훨씬 더 파고들어 다듬어야 한다.

2. 글은 지은이가 쓰지만, 읽는 것은 독자 몫이다. 즉 지은이의 손을 떠나면 그 글은 독자의 것인 것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독자에게 시어(詩語)를 통해 아름다운 정서를 전달해야 한다. 시에도 ‘느낀 것’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 따라서 탁마(琢磨)란 말이 있듯이 시어 하나를 고르는데도 시인은 하루 종일을 고민해야 한다. 그 산물이 공간에서 우릴 보고 있는 것이다. 품격높은 말(시어)에 항상 귀를 열어 놓자. 그리고 시선도 그리로 돌리자. 좀더 생각하는 작품을 쓰자는 게 심사 위원들의 주문이다.

3. 다행히 시조 작품을 낸 참가자가 셋 있었다. 우림 민족 고유의 정서시이자 국시(國詩)라고까지하는 시조가 북구 구민의 가슴속에 뿌리 내리게 하는 하나의 계기이고도 남겠다. 그래서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성취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하다는 진단에 의해 차하로 입선시키도록 만장일치로 합의하였다.

4. 어린이들이 품격있는 말을 외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시어(詩語)는 갈고 다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다. 탁마(琢磨)란 말을 기억하는가? 옥석(玉石)을 쪼고 갈아야 제대로 값어치가 생긴다는 뜻이다. 하물며 ‘시어’ 이겠는가? 좀더 품격있는 말을 고르고 고르는 노력, 아쉽다.

5. 이런 이야기를 흔히 한다. 시는 창조다. 운문이 산문보다 쉽다. 아니다. 시는 피아노나 서예 공부와 같다는 말도 있다. 피아노는 교습을 통해서만 기초 기능을 익힐 수 있고, 서예도 법첩을 놓고 끊임없이 써야 기본이 다듬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일선 학교에서 운문을 제대로 된 방법에 의해 지도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에서 기초가 더욱 튼튼해야 하겠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심시위원장 / 이원우
심사위원 / 류준형, 황길엽, 손수자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