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호

이동

옥상 터밭에서

  • 2001-10-27 00:00:00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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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실의 계절인 가을.
높고 푸르기만한 10월의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청명하다. 나는 오늘도 여는날과 다름없이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가볍게 보건체조도 할겸 작은 터밭이 있는 옥상으로 올라간다.
농촌에서는 가을걷이가 한창이라지만 한평 정도의 우리 옥상 밭에서는 흙이 좋은 탓으로 아직까지 수세미며 줄호박이 싱싱하게 커가고 있다.
밤사이에 뻗어나가던 호박순이 가시가 있는 대추나무에 넝쿨을 감고 있는 것을 보면 행여 가시끝에 찔려 상처가 나면 어쩌나 하는 안쓰러움에 감긴것을 조심스레 풀어서 옆에 있는 부드러운 모과나무 가지에 다시 감아준다. 다행스럽게도 올해에는 태풍이 부산을 비껴가서 자칫 강풍에 뿌리채 뽑혀나갔을 뻔한 고추들이 건강하게 자라주어 계절의 마지막 열기에 붉게 익어가고 있다.
흙은 정성을 드린만큼 반드시 보답을 한다더니 지난 가을 겨울동안 퇴비를 만들기 위해 음식물쓰레기를 열심히 모아서 발효시켜 밑거름으로 시비를 주었던 것이 무농약, 무공해 채소로 식탁을 풍성하게 하여주니 음식을 만들때마다 뿌듯한 기쁨을 준다.
복잡한 콘크리트 도시를 벗어나고 싶다는 소망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간절해진다. 생활 터전을 아직은 바꿀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가 소박한 전원생활의 꿈을 꿈일 뿐으로만 체념해야 하는 안타까움이 쌓일 즈음, 주어진 여건에서라도 자연 친화적인 농촌생활을 시작해 보자는 생각의 전환으로 옥상을 터밭으로 구몄다. 꽃 화분으로 가득하던 옥상에 고추며 상추 열무 등 온갖 밭 작물을 한 웅큼씩 심고 있다.
음식물 찌꺼기로 발효된 퇴비를 이용하면 유기농법의 한 방법이 되고 또한 쓰레기도 줄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하며 시작한 일이 생각 이상으로 만족감을 준다. 씨앗만 뿌리면 무럭 무럭 커주는 식물들을 보면 사뭇 하늘(기후)이 고맙고 흙이 주는 축복에 행복감이 가슴 가득하다. 흙을 만지고 있는 순간이 일상적인 생활속에서 심성이 가장 맑고 순수해지는 때인 것 같다. 자연과 하나로 동화될 수 있는 깨달음을 나는 흙에서 배운다.
빨간 고추잠자리가 아직 뽑지않은 고추대 위에 앉아 날개를 팔랑이며 노오란 호박꽃 속에 숨어있는 애기벌을 바라보고 있다.
아파트숲 사이에서 벌, 나비, 잠자리들을 늘 만날수 있는 것은 흙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이다. 이제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내년에 풍성한 수확을 위하여 퇴비 만들 준비를 또 시작해야지.
서혜경 / 구포2동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