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호

이동

무용담

  • 1997-06-25 00:00:00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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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산야를 누비며 싸우던 생존한 노병들의 뇌리속에 사무친 6.25당시 혈전장의 참혹상 어찌 지워버릴수가 있겠는가?
대한상이군경회북구지회를 방문해 그때 당시 참전 용사들의 무용담을 들어 보았다.

▣ 정 용 택씨 (68세)
그때가 아마 51년 8월로 기억됩니다. 우리부대는 계속해서 밀려 경북 영일까지 후퇴했었죠. 이곳에서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9월말쯤 다시 북진을 계속해 서울시가전을 15일정도 치른후 포천 중부 전선으로 나아가 싸우다 황해도 사리원 도로를 따라 평양까지 진격했습니다. 이때 저는 6사단 7연대 소속으로 계급은 중사, 전방수색대의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리고 평안북도 초산까지 들어가 정찰을 했죠. 여기서 저희 정찰조는 중공군 1개대대 병력에 완전포위되어 구사일생으로 평양까지 내려올 수 있었는데 약 21일이 소요되었습니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습니다. 그후 저는 철원, 정곡을 거쳐 임진강까지 내려와 아군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친 것은 강원도 춘천 명류동에서 미군과 같이 합동작전때인데 왼팔에 관통상을 입고 원주로 후송 되었죠.

▣ 김태옥씨(67세)
구포초등학교에서 모여 이틀간 군사연습을 마치고 5사단 36연대 소속으로 8월 20일경 황해도 사리원까지 올라갔습니다. 그후 1.4후퇴를 만나 경기도 청평역에 도착하니 말그대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피난민 행렬과 여기저기 쌓여있는 시체더미, 정말 지옥이 따로 없었죠, 그다음 가평에서 적 5사단을 만나 치열한 전투를 벌였죠. 가평시가전에서 승리해 가평시를 탈환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분대장을 맞고 있었는데 좋은 기분도 잠시, 삐라가 여기저기서 흩어지고 있었는데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것은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의미하는 삐라였습니다. 얼마 안있어 중공군이 밀고 내려오는데 아무리 총을 쏘아도 그수가 줄지를 않아요. 그때에 인해전술이 얼마나 무서운것인가를 알게되었죠. 그 당시 아군 3개 사단이 중공군에 완전 포위되어 상당한 타격을 입었으며 저도 후퇴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때에 북한강을 건너다 동상에 걸려 발가락을 절단하였죠. 6월만 되면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 납니다.

▣ 최 갑 조씨(67세)
저는 포항 안강전투에 임했는데 정말 치열한 전투였습니다. 김일성 정예부대와 맞부딪혀 한달간 전쟁을 치뤘는데 안강은 마지막 방어선으로 이곳이 무너지면 부산까지 함락되기 때문에 결코 적에게 넘겨 줄 수 없는 최후의 방어선으로 절박한 상황이였습니다. 그때는 경찰과 학도병까지 동원된 일명 낙동강 전투였죠. 그때가 9월 12일로 기억되는데 엄청난 비가 왔어요. 거짓말이 아니라 안강으로 흐르는 물에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 떠내려 갔습니다. 또한 그때는 이름도 없이 죽어간 사람이 너무 많았죠. 그 당시 군이이라면 안강전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죽어가는 동료들을 바라볼 때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였죠. 그리고 약 한달간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다가 인천상륙작전 이후 연합군의 도움으로 이 전투도 이기고 북진을 할수 있었습니다.

최종수정일2020-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