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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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구 문화·역사 / 구포나루터(上)

  • 2023-07-10 20:10:15
  • 정영미
  • 조회수 : 420

우리구 문화·역사 / 구포나루터(上)

우리구 문화·역사 / 구포나루터(上)

우리구 문화·역사 / 구포나루터(上)

우리구 문화·역사 / 구포나루터(上)
우리구 문화·역사 / 구포나루터(上)
우리구 문화·역사 / 구포나루터(上)
세곡 보관하는 감동창 설치되면서 번성
 
조선시대 낙동강유역의 3대 나루터인 구포 감동나루터는 낙동강 하류쪽 뱃길의 시발지이며, 상류 쪽에 칠백리 뱃길의 종착지인 상주 낙동나루터가 있다. 중류 쪽에는 오광대탈놀이의 시원지인 합천 율지리의 밤마루나루터가 있다.
구포 감동진이 크게 부각된 것은 부산에서 낙동강으로 진입하는 하구지역의 물목으로서 지리적 환경이 중요한 작용을 했으며, 나라에서 이곳에 세곡을 보관하는 삼세조창(三稅漕倉)인 감동창을 설치하면서 강 수로를 이용한 물산(物産)의 집산지와 교역지로서 구포장터가 번성하였다.
감동진은 조창과 장터를 드나드는 선박들이 줄을 이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감동진 나루에 드나드는 조운선(漕運船), 상선, 어선, 나룻배 등이 장날이면 하루 100여 척이 드나들어, 지금의 금빛노을브릿지 일대에는 배의 돛으로 가득하여 도회지를 방불케 하였다.
감동진과 감동장(甘同場)이 있어 크게 번창했던 구포나루가 구 한말에도 계속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은 구포장터(甘同場)에서 교역한 물품들이 상선에 실려 상류로 올라가면서 벼(나락)와 교환하여 싣고와 감동진에 내려놓으면 구포에 생겨난 근대식 정미소에 넘겨졌다.
도정(搗精)한 쌀은 배편으로 일본으로 수출하게 되면서 구포나루에는 300~500석을 싣는 대형범선들이 정박하였다.
1930년대 구포다리가 가설되고 낙동강 제방이 축조되면서 다소 위축되었다. 그러나 새로 조성된 강변 나루터에는 낙동강 하류 남지 등 서부 경남지역의 벼들이 배에 실려와 구포 강변의 정미소에서 도정되어 강변에 설치된 철도지선을 통해 구포역으로 하차되어 전국으로 보급됐다. 일본으로 가는 물량도 여전히 구포나루를 통해 운송되었다.
8·15광복 이후 1950년에도 큰 배가 드나들었으나 정미소의 쇠퇴로 나루터 기능을 잃어갔다. 나룻배 역할을 마지막으로 한 것은 구포에서 대동을 오가던 배였으나 그것도 1980년 초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김동국 / 희망북구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