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호

이동

바로알아야할 지명-덕천 의성마을

  • 2012-03-02 00:00:00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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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때 쌓았다는 성에서 이름 유래
=왜구 막다 순국한 군사들의 의로운 넋 깃들어

의성(義城) 마을은 옛 성터가 있는 의성산의 강변 쪽에 있는 마을이다. 의성산에는 임진왜란 때 왜군이 주둔하면서 쌓은 성터가 남아있다. 이 성터를 지방문화재 기념물로 지정하면서 구포왜성으로 지칭하였으나 지역민들은 이 성터를 의성이라 불러왔다.
의성은 신라시대에 왜구들의 침략에 대비해 생겨났다는 전설이 있다.
신라 법흥왕 때는 수천 명의 왜구가 쳐들어와 고구려에 원병을 청원하는 사신까지 보냈다고 한다. 그때 성을 지키는 군사는 500여명이고 성주(城主)는 황룡이란 장군이었는데 죽기를 각오하고 맞서 싸우다 전멸했다고 한다. 조정에서는 의로운 죽음을 택한 황룡장군과 군사들을 추모하는 뜻으로 이 성을 의성으로 명명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의성마을이 되었고 산도 의성산으로 불러왔다.
의성산은 경관 또한 뛰어난 곳이라 의성대(義城臺)라고 하였다. 의성산의 정남향 중심부에 있는 구룡사(龜龍寺)는 옛날 화명, 금곡, 산성, 양산 쪽 사람들이 구포장터를 오르내리는 길목으로서 의성절로 불러왔다. 구룡사에는 용왕샘터가 있다. 샘터에는 위쪽으로 깊숙이 굴이 뚫려 있는데 이곳에 살던 용이 산 정상을 뚫고 승천하여 동굴처럼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의성마을에서 성터의 서쪽 산을 끼고 있는 마을을 안의성마을, 그 아래 강변 쪽을 바깥의성마을이라고 한다. 이곳에 1903년 경부선 철로가 놓이면서 마을이 철로 안쪽에 갇혀 버렸고 배를 대던 의성나루터도 철길을 건너야 내왕할 수 있었다. 이 나루터에는 주로 동네사람들의 어선이 정박했는데 100여년간 지형의 변동으로 샛강으로 변한 물길도 완전히 없어졌다.
구포에서 덕천을 지나 바깥의성과 안의성 사이로 난 고갯길은 의성고개로서 옛날 고성(古城) 주막이 있었는데 옛 모습은 없어지고 4차선도로로 변하였다. 의성산을 끼고 강변 쪽으로 형성되었던 마을은 금곡로 4차선 도로가 관통하면서 옛 모습을 찾기 힘들게 되었다.

최종수정일2020-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