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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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 우리네 사는 마을 태평성대 이루게 하소서

  • 2001-01-19 00:00:00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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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사는 마을 태평성대 이루게 하소서
‘설'은 순수 우리말로써 그 말의 뜻에 대한 해석은 구구절절 하다. 농사를 짓는 우리민족은 일년 농사가 잘되기를 조심스럽게 축원하는 엄숙한 마음으로 설을 보냈다. 설 ‘설'은 순수 우리말로써 그 말의 뜻에 대한 해석은 구구절절 하다. 그 중 하나가 ‘서럽다'는 ‘설‘이다. 다음은 ‘사리다' [愼, 삼가다.]의‘살’에서 비롯했다는 의견도 있다.‘설’의 어원에 대해 또 다른 견해는 나이를 댈 때 몇 살… 하는 ‘살'에서 비롯된 연세설이다. 또한 설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견해는‘설다. 낯설다' 의‘설'이라는 어근에서 나왔다는 것으로‘설은 날'이‘설날'로 정착되었다는 주장이다.
이중 ‘삼가다'의 뜻과‘낯설다'는 의미가 가장 타당한 주장이라고 꼽는데 각종 세시기들이 설을 신일(愼日)이라 하여‘삼가고 조심하는 날'로 기술한 것도 몸과 마음을 바짝 죄어 조심하고 가다듬어 새해의 첫 시작을 경거 망동하지 말라는 까닭이었던 것 같다.
농사를 짓는 우리민족은 일년 농사가 잘되기를 조심스럽게 축원하는 엄숙한 마음으로 설을 보냈다. 새해 첫날인 설날은 하루 종일 복을 빌고 좋은 말을 많이 들으면 일년 내내 그러하고, 좋은 음식을 배부르게 먹으면 일년 내내 배부르다고 한다. 그래서 설날부터 한 3일동안은 길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왕래하는데, 울긋불긋한 옷차림이 빛나며,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무병하세요"등 좋은 일을 들추어 덕담을 나눈다.
남녀가 1년간 빗질할 때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빗상자 속에 넣었다가 설날, 황혼을 기다려 문 밖에서 태움으로써 나쁜 병을 물리치는 풍습도 있었다.
설날 밤이면‘야광이' 귀신을 쫓기 위해 대문위나 기둥에 체나 광주리를 걸어두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풍습도 있다. 야광이라는 귀신은 집집마다 들어가서 사람들의 신발을 신어보고, 자기 발에 맞으면 그냥 신고 가는데 신발임자는 그해 운수가 나쁘다고 하여 이날 밤에는 모두 신발을 방에 들여놓고 잠자리에 든다.
대문에 체나 광주리를 걸어두는 것은 야광이가 셈하기를 좋아하는 귀신이어서 채의 구멍을 세다가 신발 훔치러 왔음을 잊고 새벽닭 울음에 도망친다는 것이다. 사실 야광이 이야기는 설날 밤늦도록 자지 않고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의 나쁜 점을 고치려 만들어진 이야기인데 어느새 풍속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설날 꼭두새벽에 거리에 나가 맨 처음 들려오는 소리로 1년간의 길흉을 점치는데, 이를 청참이라고 한다. 또한 나무에 금목수화토를 새겨 장기쪽 같이 만들어 이것을 던져서 자빠지고 엎어진 것을 보아 점괘를 얻어 새해의 신수를 점치는 오행점도 있다. 설날은 가족과 친지 이웃이 모여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등 여러 가지 놀이도 즐기는데 가장 대표적인 놀이가 윷놀이다. 윷놀이는 대개 정월초하루부터 보름까지 즐긴다.
부여족 시대에 다섯가지 가축을 5부락에 나누어주어 그 가축들을 경쟁적으로 번식시킬 목적에서 비롯된 놀이라고 하는데‘도'는 돼지이고‘개'는 개,‘걸'은 양,‘윷'은 소,‘모'는 말을 일컫는다. 설에는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이웃끼리 나누어 먹기도 하고 세배하러 오는 손님에게‘세찬'을 대접하기도 한다. 이 세찬 가운데 가장 으뜸이 ‘떡국’이다. 어느 집에서나 흰떡(白餠)을 만들어 떡국을 끓이는데 떡국 한 그릇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떡으로 만들 수 있는 설음식은 떡국외에도 떡만두국, 떡볶음, 떡찜, 떡산적, 떡잡채 등이 있다. 그 외 설 음식으로 우리나라 음식을 대표할 수 있는 신선로와 갈비찜, 사태찜, 생선점, 편육, 족편 등의 고기음식을 손님에게 대접하기도 하고 떡과 함께 먹는 장김치, 녹두빈대떡, 각색 전, 삼색 나물, 겨자채, 잡채 등을 상차림 한다.
후식류로는 약과, 다식, 정과, 엿강정, 강정, 식혜, 절편, 꽃절편, 인절미, 수정과 등이 있다. 또 설날 새벽 가족들은 이명주(耳明酒)라 하여 귀가 밝아지는 약주를 한잔씩 마시는 것도 지금까지 풍습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정월대보름 신라시대부터 지켜 온 명절로 달이 가득 찬 날이라 하여 재앙과 액을 막는 제일(祭日)이다. 정월 14일 저녁에는 오곡밥과 묵은 나물을 먹는다. 또한 달을 보면 운이 좋다고 하여 달맞이를 하였다. 이날은 명절이므로 농부들은 농악을 치고 술마시고 배불리 먹고 하루를 즐긴다.
여름철에 일손이 모자랄 정도로 바빴던 농부들도 정월은 한가하니 오락을 즐기게 된다. 이때 주로 거북놀이 관원놀이(감영놀이) 나무쇠싸움(쇠머리대기) 놋다리밟기(기와밟기) 다리밟기(답교놀이) 달맞이(망우리) 봉죽놀이 사자놀이(주지놀음)를 즐겼다. 어린아이가 봄을 타고 살이 여위는 것을 막기 위해 백 집의 밥을 얻어다가 절구 위에 앉아서 먹는 풍습도 있었다.
또 새벽에 일어나 사람을 불러서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가라" 하며 더위 팔기를 하여 병이 없는 여름이 되길 기원했다. 대보름의 음식으로 오곡밥, 약식, 부럼, 귀밝이술, 묵은 나물, 복쌈, 원소병, 팥죽 등이 있다. 쪳 여인들의 나들이가 보장된 정월대보름 정월 대보름에는 다리 밟기와 달맞이를 위해 여인들의 밤 나들이가 보장되는 날이었다.
참고로 여인들은 달과 관련해 2월 보름은 연등(燃燈)날이라 밤나들이, 3월 보름은 답청(踏靑)날이라 보리밭 밟으려 밤나들이, 6월 보름인 유두절(流頭節)엔 동으로 흐르는 계곡 물에 머리 감으러 밤나들이, 7월 보름인 백중(百衆)은 조상의 명복을 비는 상사(上寺) 밤나들이가 보장되었다. 쪳 은밀한 연인의 날 그리고 대보름은 은밀하나마 연인의 날이 있었다.
이를테면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정월 대보름의‘탑돌이'는 우리 고유의 발렌타인데이 풍속이었다. 남녀가 탑을 돌다가 눈이 맞아 마음이 통하면 사랑을 나누었던 신나는 축제날이었던 것이다.
세조 때의 서울 원각사‘탑돌이'는 연문과 추문이 심하여 금지령까지 내렸다한다. 연중 단 한 번의 공식외출을 허락 받았던 정월 대보름날 밤에, 다리를 밟다가 눈이 맞은 마음의 상처를 간직한 채 울안에 갇혀 사는 처자들의 상사병을‘보름병'이라 했다. 대보름날은 한국의 발렌타인 데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서양식 발렌타인데이에 보도된 바로는 수십 억 원대의 초콜릿이 수입되고 하나에 수만 원까지 하는 발렌타인 초콜릿까지 나왔다 한다. 상혼으로 유인하는 문화적 사대주의에 놀아날 것이 아니라 사랑을 고백하는 연인의 날이 필요하다면 이번 정월대보름 연인의 날을 부활시켜봄직 하지 않은가.
2001년정월대보름 달맞이 행사 올해 북구의 발전과 구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정월대보름 달맞이 행사가 오는 2월 7일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낙동강변에서 개최된다.
이날은 구민의 송액영복을 기원하고 서로 덕담을 나누며 주민 모두가 참가하는 민속놀이 등이 준비되어 있다. 고장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당산제가 새벽 0시 구포대리당산에서 열리고 오전 11시부터 구포대리지신밟기가 재현된다. 길놀이와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등 1부행사가 계속 이어진다.
오후 5시부터 달맞이 의식이 시작되는데 월령기원제, 달집점화 및 달집돌이, 구포다리밟기, 쥐불놀이 등의 민속놀이가 펼쳐진다. 다리밟기는 옛날 고려 때부터 시작해 조선시대까지 성했던 민속놀이다.
그 후에도 지방에 ‘답교'라고 하는 다리밟기 풍속이 남아 있었으나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구포다리밟기의 유래는 조선시대 이유하 양산군수가 재임당시 대리천 제방에 큰 대리마을과 작은 대리마을을 이어주는 대리다리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두 마을 사람들이 다리밟기를 했다. 다리를 밟으면 다리병이 걸리지 않는다하여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 날 밤에는 모두 나와 다리를 밟는 통에 온 동네 다리목은 노랫소리가 높고 피리를 불기도 하고 북을 치면서 이 날 밤을 마음껏 즐겼다고 한다.
구포다리밟기는 1930년 낙동강 구포다리가 가설되면서 구포쪽과 김해쪽 사람들이 1060m나 되는 다리를 밟으며 내왕 했는데, 달빛 아래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전한다.
이를 지난해 달맞이부터 재현해 올해 두 번째를 맞는다. 달집의 불은 활활 잘타고 연기가 많이 날수록 마을이 태평하고 풍년이 든다는데 올해 달집도 활활 타기를 기원한다.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