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호

이동

<독자마당>

  • 2024-04-25 20:43:17
  • 정영미
  • 조회수 : 146
고향의 어머니, 짠한 아들의 마음
 
이제 얼마 후면 5월 8일 어버이날이다.
고향에는 늙으신 어머니가 홀로 계신다. 아버님을 먼저 떠나보내시고 고집스럽게 고향 전통시장에 나가 장사를 하시며 지내신다. 연세가 있으신지라 함께 살자고 말씀을 드리지만 한사코 도시의 아파트 생활이 싫다고 손사래를 치신다.
엊그제, 아내와 함께 고향인 경남 진주로 출발하였다. 비가 오는데다 가로등도 없고 인적도 뜸한 시골의 밤길 운전이라 조심조심 서행을 하다 보니 밤 9시가 넘어서야 마을 어귀에 당도했다.
그런데 저만치 걸어가는 할머니 세 분이 보였는데 그 중 한분이 영락없는 어머니셨다. 급히 차를 세우곤 “어머니, 저 왔어요”라고 인사를 하고 세 분 모두 차에 타시라고 하자 손사레를 치셨다. 어머니는 “아니다, 퍼뜩 집으로 들어가거라. 이 꼴로 차에 타면 의자가 다 젖는다”고 하시며 그냥 가라고 하셨다.
옷이 젖어 아들의 차를 버릴까 봐 타지 않고 우리더러 그냥 가라고 하신 어머니와 다른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면서 운전을 아내에게 시키고 어머니와 함께 비를 맞으며 걸었다.
집에 도착한 어머니는 짐 꾸러미에서 감자떡을 꺼내 우리에게 먹으라 하셨다. 내가 어릴 적부터 무척 좋아했던 감자떡. 아들 나이가 쉰인데도 그걸 먹이시겠다고 시장에서 손수 사들고 오신 것이다.
우리는 오랜만에 어머니와 함께 감자떡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어머니, 시장에서 장사는 그만 하시고 부산으로 올라와 저랑 사세요. 힘드시잖아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무슨 소리고? 그냥 심심해서 하는 것이고 또 그게 취미인기라. 그래야 건강하니까 내 걱정 말고 애들이나 잘 챙기라”고 하신다. 그 고집을 꺾기도 어렵다.
아내는 그날 어머니가 비를 쫄딱 맞고 들어오시는 모습을 보고서 대형 마트에는 발길을 뚝 끊었다. 그리고 항상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으로 간다.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윤석천 / 만덕동



강촌 마을에 대한 그리움
 
낙동강을 끼고 있는 아늑하고 포근했던 고향마을은 이른 새벽이면 낙동강 물줄기에서 하얗게 피어오른 물안개에 둘러싸이곤 했다. 물안개는 억새로 엮어진 초가집 지붕 등에 눈송이처럼 살포시 붙어 있다가 녹아내리곤 했다.
나는 그 마을에서 파랗게 밀려오던 강물을 바라보면서 자라왔다. 오월이 되면 청보리밭 사이를 가로 지르면서 뛰어 놀았다. 또 동무들과 밀을 구워먹고 새까만 입으로 해맑게 웃으며 은빛 모래밭을 누비며 놀았다.
파도가 사르르 밀려올 때에는 모래 위에 고무신의 발자욱을 남기며 뛰어 놀았던 추억들이 생생하다. 또 강 언저리 갈대숲에서 버들피리를 함께 불던 친구들의 여린 모습들이 지금은 빛바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슬픈 기억들도 있다. 세월이 흘러 우리가 장성했을 즈음에 고향의 친구에게 맞선을 보러오던 총각이 나룻배 타고 오다가 사고가 났던 것이다. 사고는 강물에 떠내려 오던 얼음덩이에 배가 부딪히면서 발생한 것으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지금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고향에 대한 다양한 추억이 생생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루터 등에서 친구들과 천진난만하게 뛰어놀기도 했고 희미한 호롱불 아래에서 재잘거리던 그 밤들이 새삼 그리워진다.
철모르던 어린 시절 낙동강과 연관된 옛 추억은 내 마음 깊숙이 새겨져 잊을 수가 없다.
그 때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순수하고 정겨웠던 기억들로 가슴이 찡해질 것 같다.
또 긴 그리움을 지나온 만남이기에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련한 그리움이 커져 가고 있지만 아쉬움을 뒤로 한채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석양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본다.
최순자 / 화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