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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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작은 것에 대한 감사함

  • 2021-10-05 14:56:34
  • 정영미
  • 조회수 : 1164
어느덧 반평생을 넘게 살면서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들이 이제는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고, 하나하나에 감사하게 느끼게 되는 것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난감한 상황을 보게 되었다. 시장에서 장을 보고서 버스를 탔는데 어떤 할머니께서 지갑을 어디다 두신 건지 잃어버리신 건지, 버스 요금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버스 안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는데 아무도 할머니의 버스 요금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버스기사분만이 잘 찾아보시라고 할 뿐이었다. 할머니는 한참을 가방과 장바구니 속을 뒤지며 지갑을 찾아보았지만 끝내 못 찾으셨다.
그래서 나는 조금 망설여지긴 했지만 기사아저씨께 “제가 할머니 요금을 내 드리겠다”고 말씀드리고 교통카드를 찍었다. 할머니는 내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셨다. 나는 괜찮다고 계속 말씀드렸으나 내가 내릴 때까지 연신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날 집에 와서 옛 생각에 잠시 잠기게 되었다. 내가 고등학생 때 할머니와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된 적이 있었다. 학교 야간수업을 마치고 버스를 탔는데, 교복 주머니에 들어있던 회수권이 없어진 것이다. 버스 안에는 기사 아저씨와 손님 몇 명과 나뿐이었다.
나는 당시 너무 당황하고 그런 일이 처음이라서 아무 말도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계속 서있었는데, 그때 뒤에 앉아 계시던 어떤 아주머니께서 기사 아저씨에게 “제가 학생 요금 대신 낼게요.”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난 너무 감사해서 아주머니께 감사하다는 말을 정류장에 내릴 때까지 계속 했던 기억이 난다.
수십 년 전에 내가 누군가로부터 감사함을 느꼈던 것처럼 현재의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베풀 수 있어서 작은 것에 대한 감사함을 새삼 느낄 수 있는 하루였다.
엄수빈 / 구포2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