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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사천에 가을이 오면…
- 2025-10-27 10:01:45
- 정영춘
- 조회수 : 630
내 고향 사천에 가을이 오면…
박정도(화명동)
내가 태어나 자란 고향은 경남 사천시의 시골 마을이다. 스무 살에 부산으로 이촌향도했으니 벌써 40년이 지났다. 고향은 지금 고령의 어르신들만 살고 젊은이들은 아예 없다. 어린 시절 친구가 없으니 고향에 갈 일은 매우 드물다. 그렇지만 고향에서의 추억은 가슴에 남아 장년의 현재 삶을 기름지게 해준다.
고향은 농민들의 마을이었지만 산이 푸르르고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그래서 사시사철 먹을거리는 지천에 널려 있었다. 특히 결실과 수확의 계절 가을이 오면 들과 산엔 온갖 먹을거리가 넘쳤다. 그래서 배고픔은 거의 모르고 살았다.
가을이 오면 야산에서 밤을 많이 거둘 수가 있었는데 산 주인이 있건 없건 밑에 떨어진 밤은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였다. 틈틈이 친구들과 밤나무 아래로 가서 토실토실 익은 알밤을 주워 생으로도 먹고 굽거나 삶아서도 먹었다. 밤을 정신없이 줍다가 벌침에 쏘이기도 하고 독사를 보고 혼비백산하기도 했다.
밭에서 캔 고구마는 훌륭한 주전부리였다. 쇠죽을 끓이고 난 아궁이 불에서 고구마를 구워 먹으면 맛이 천하일품이었다. 그 어떤 산해진미도 부럽지 않은 출중한 간식거리였다. 초가지붕에 생고구마를 납작하게 썰어 말린 말린 고구마도 멋진 간식이었다. 말린 고구마를 호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심심풀이로 즐겨 먹었다. 또 말린 고구마로 죽을 끓여 먹으면 남다른 별미였다. 고향엔 집집마다 감나무 몇 그루는 있어서 감을 납작하게 썰어 말린 감말랭이도 내세울 만한 주전부리였다. 감말랭이는 얼마나 맛이 달콤한지 요즘의 사탕이나 초콜릿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단맛이 났었다.
그 밖에도 산과 들엔 이름 모를 온갖 열매가 넘쳐났다. 비록 하얀 쌀밥이나 고깃국은 배불리 먹지 못해도 나만 부지런하면 먹는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집을 나서면 곳곳에 먹을거리가 넘쳤으니 말이다. 올가미를 놓아 토끼를 잡기도 했고 꿩을 잡아서 직접 요리해 먹기도 했다.
부모님은 늘 우리 형제자매를 기르며 “눈(目) 같이 게으르지 말고 손(手) 같이 부지런히 하라!”고 말씀하셨다. 눈으로 일거리를 보면 언제 다할까 걱정이 되지만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 일하면 금방 다한다는 진리의 말인데 우리에게 항상 당부해 주셨다.
그런 세월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내 나이 예순 살을 조금 넘겼다. 지금은 부산에서 살고 있지만 사천의 추억을 생각하면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진다. 여건이 된다면 내 고향 사천을 찾아 추억의 길을 다시 가보고 싶다.
박정도(화명동)
내가 태어나 자란 고향은 경남 사천시의 시골 마을이다. 스무 살에 부산으로 이촌향도했으니 벌써 40년이 지났다. 고향은 지금 고령의 어르신들만 살고 젊은이들은 아예 없다. 어린 시절 친구가 없으니 고향에 갈 일은 매우 드물다. 그렇지만 고향에서의 추억은 가슴에 남아 장년의 현재 삶을 기름지게 해준다.
고향은 농민들의 마을이었지만 산이 푸르르고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그래서 사시사철 먹을거리는 지천에 널려 있었다. 특히 결실과 수확의 계절 가을이 오면 들과 산엔 온갖 먹을거리가 넘쳤다. 그래서 배고픔은 거의 모르고 살았다.
가을이 오면 야산에서 밤을 많이 거둘 수가 있었는데 산 주인이 있건 없건 밑에 떨어진 밤은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였다. 틈틈이 친구들과 밤나무 아래로 가서 토실토실 익은 알밤을 주워 생으로도 먹고 굽거나 삶아서도 먹었다. 밤을 정신없이 줍다가 벌침에 쏘이기도 하고 독사를 보고 혼비백산하기도 했다.
밭에서 캔 고구마는 훌륭한 주전부리였다. 쇠죽을 끓이고 난 아궁이 불에서 고구마를 구워 먹으면 맛이 천하일품이었다. 그 어떤 산해진미도 부럽지 않은 출중한 간식거리였다. 초가지붕에 생고구마를 납작하게 썰어 말린 말린 고구마도 멋진 간식이었다. 말린 고구마를 호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심심풀이로 즐겨 먹었다. 또 말린 고구마로 죽을 끓여 먹으면 남다른 별미였다. 고향엔 집집마다 감나무 몇 그루는 있어서 감을 납작하게 썰어 말린 감말랭이도 내세울 만한 주전부리였다. 감말랭이는 얼마나 맛이 달콤한지 요즘의 사탕이나 초콜릿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단맛이 났었다.
그 밖에도 산과 들엔 이름 모를 온갖 열매가 넘쳐났다. 비록 하얀 쌀밥이나 고깃국은 배불리 먹지 못해도 나만 부지런하면 먹는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집을 나서면 곳곳에 먹을거리가 넘쳤으니 말이다. 올가미를 놓아 토끼를 잡기도 했고 꿩을 잡아서 직접 요리해 먹기도 했다.
부모님은 늘 우리 형제자매를 기르며 “눈(目) 같이 게으르지 말고 손(手) 같이 부지런히 하라!”고 말씀하셨다. 눈으로 일거리를 보면 언제 다할까 걱정이 되지만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 일하면 금방 다한다는 진리의 말인데 우리에게 항상 당부해 주셨다.
그런 세월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내 나이 예순 살을 조금 넘겼다. 지금은 부산에서 살고 있지만 사천의 추억을 생각하면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진다. 여건이 된다면 내 고향 사천을 찾아 추억의 길을 다시 가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