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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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구 문화·역사, 역사인물(양통한 장군)

  • 2025-02-25 16:58:40
  • 정영춘
  • 조회수 : 1233

우리 구 문화·역사, 역사인물(양통한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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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구 문화·역사, 역사인물(양통한 장군)
우리 구 문화·역사, 역사인물(양통한 장군)
우리 구 문화·역사, 역사인물(양통한 장군)
임진왜란 순절한 양통한 장군
만덕동 상학산 가야골에 안장되다

 
통훈대부 양통한(梁通漢)
 
본관은 남원양씨이며 고향은 동래로 아들 양의(梁義), 양숙(梁鷫)이 있었다.
그리고 형 양조한(梁朝漢, 동래향교 훈도)이 임진왜란 동래읍성 전투에서 공자 등 동래향교 배향된 5명의 신위를 관아 객사 정원루에 옮기고 신주를 땅에 묻은 후 정원루를 지키다 왜군의 총탄에 아들 양홍(梁鴻)과 함께 전사하였다. 이때 12살이던 장손 양부하(梁敷河, 1581~1673)는 왜군의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러갔다.
이렇게 형과 조카가 순절하자 양통한은 의병이 되기로 마음먹고 1592년 6월 의병단체 문천회맹(蚊川會盟)에 참여하여 경주성 탈환 참여하였다.
그 해 7월에는 영천 복성(復城)전투 참여, 8월에는 서천(西天)전투 승리, 9월 초 경주성 탈환에 공(功)을 세웠다. 또한 1596년 3월 팔공산 58개 고을 의병장 420여명과 팔공산회맹에 참여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아들을 데리고, 그 해 7월에 곽재우와 화왕산회맹을 결성하여 화왕산전투를 승리하여 성(城)을 지켰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와 초야에 묻혀 살면서, 장손 양부하가 1629년(인조 27) 37년만에 일본에서 돌아와 이를 돌보고 계보와 대(代)를 잇게하였다.
 
삼절사(三節祠) 배향된 공신 3인

『동래군지 능묘표편』에는 양통한의 묘소가 부산 북구 만덕동 상학산 가야골 자락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1695년(숙종 21)에 정려가 건립되고, 1736년(영조 12)에 호조좌랑 추증, 1758년(영조 34) 통훈대부 군자감정 추증되었다.
그 후 1839년(헌종 5) 동래유림 주도로 해운대 반송동 신반송로 182번길 24에 삼절사(三節祠)를 건립하고, 임진왜란때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동래읍성에서 순절한 양조한, 곽재우와 함께 화왕산성에서 의병 활동을 한 양통한, 경기도 광주군수로 성을 지키다 순절한 양지 등 임진왜란 순절한 남원 양씨 3인 (양조한, 양통한, 양지)을 배향하여 매년 4월 15일에는 영남 유림에서 제향을 하고 있다.
김동국 / 낙동문화원 향토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