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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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 명소·명물 / 화명1동 화명동·덕천동고분군

  • 2022-07-04 15:00:34
  • 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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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 명소·명물 / 화명1동 화명동·덕천동고분군

우리동 명소·명물 / 화명1동 화명동·덕천동고분군
삼국시대 소규모 세력 살았던 흔적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도굴
도시개발로 분묘·유물 사라져

 

화명동에는 삼국시대 금관가야권에 속하여 소규모집단의 세력이 살았던 흔적으로 4~5세기에 화명동고분군, 6~7세기에 덕천동고분군이 있다.
◇화명동고분군(華明洞古墳群)=금곡대로 186번길 43(명덕초등학교·화명중학교)일대 900평 정도로 해발 50m에 위치하였다. 서쪽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북쪽 하단에는 수정마을이 있는 금정산 기슭에 해당되는 곳이다. 1972년 부산대 박물관에서 발굴하였는데,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도굴되고 파괴가 심하였다.
유구는 모두 7기의 고분으로 깬돌을 이용하여 네 벽을 쌓아올린 수혈식석곽묘이며, 출토된 유물은 토기 53점, 철기 28점, 청동교구 1점이다. 토기는 대부분 목짧은 항아리이며, 철기는 소량의 활촉, 창, 도끼, 칼, 낫 등이다. 이러한 유물들은 4~5세기 부산지역 문화복원에 중요한 자료들이다. 그리고 7호분 유물은 일본 수에키의 발생연대를 추정하는 자료로 2호분은 앞 단계의 목곽묘 전통을 잇고, 5호분은 목곽묘 목곽 대신 석곽으로 대체된 형태로 영남지방 초기의 석곽묘 원류와 계보를 추적하는 주요한 묘제이다. 화명동고분군은 복천동고분군을 중심으로 한 집단의 소규모 세력으로 추정된다.
◇덕천동고분군(德川洞古墳群)=금곡대로 166(화명롯데캐슬카이저아파트 101·102·202동 등) 일대이며 개발 전에는 덕천동 산50, 53, 54번지로 1981년 부산박물관 주관 하에 동아대·동의대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하였다. 화명동고분군과 인접한 6~7세기 전반의 소규모세력 집단이 조영한 분묘로 총 67기의 수혈계횡구식석실묘 41기, 횡구식석실묘 17기 등이다. 출토유물은 토기류 430점, 철기류 70여점, 기타장신구류 10여점 등 총 510여점으로 삼국시대 유물들이다.
토기류는 항아리, 고배, 가락바퀴 등 다양하고 대부분 신라 토기이며, 일부는 김해·부산 중심의 6세기 중반에 일시 유행한 것도 있다. 철기류는 소량의 활촉, 창, 도끼, 칼, 낫 등이고 장신구류는 과대금구, 이식, 제사용기의 청동방울이다.
분묘는 동일 구릉에서 동쪽사면에만 설치한 특징과 큰 분묘를 중심으로 3~4기의 소형묘가 소그룹을 이루고 있어 단위세대 공동체의 가족묘로 보여진다.
덕천동고분군은 대규모세력인 연산동고분군을 중심으로 두구동 임석고분군, 좌동고분군 등과 소규모세력으로 고분군을 구성하고 있다.
김동국 / 희망북구 편집위원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