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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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장터 3·1만세운동의 의미 함께 되새깁시다

  • 2021-03-31 16:11:59
  • 정영미
  • 조회수 : 1287

구포장터 3·1만세운동의 의미 함께 되새깁시다

구포장터 3·1만세운동의 의미 함께 되새깁시다
재현행사 개최하지 않고
사진전 열고 포토존 운영
구포초등학교 학생·학부모
독립운동가 흉상 제막 예정

 
3월 29일은 구포장터 3·1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2주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 구와 낙동문화원은 해마다 구포만세거리에서 그 날의 감격을 되새기는 재현행사를 펼쳐왔으나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19 차단을 위해 행사를 개최하지 못하게 된 상황이다.
그러나 아쉬워하긴 이르다. 선열들이 그랬든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목청껏 외치지는 못하지만 ‘구포장터 만세운동 102주년 기념전시회’인 ‘문화재 태극기 사진전’을 3월 23일부터 4월 4일까지 구포만세거리의 만세갤러리에서 개최한다.
또 구포 출신 독립운동가 우산(右山) 윤현진(尹顯振) 선생의 모교인 구포초등학교(당시 구포사립구명학교)에서 선생의 애국혼을 기리기 위해 3월 27일 흉상을 제막할 예정이며 학교 안의 일제잔재를 청산하는 활동을 펼쳐 주목받고 있다.
◇문화재 태극기 사진전=독립기념관의 특별기획전으로 고종황제가 미국인 외교고문 데니에게 하사한 태극기 등 20여점을 전시한다. 또 우리 구와 낙동문화원이 1999년부터 진행해온 구포장터3·1만세운동 재현행사를 기록한 사진 200여점을 전시한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만세인형 만들기와 만세운동329 그리기를 진행하며 의병 복장 등을 입고 기념촬영을 할 수 있는 포토존을 운영한다. 문의 문화체육과 ☎309-4522, 만세갤러리 ☎333-5567
◇윤현진 선생 흉상 제막=윤현진 선생은 15세인 1907년 구포사립구명학교에 입학해 제1회로 졸업하였으며 20세 때 일본 메이지대학 법대에 입학했다가 22세에 귀국한 이후 독립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상해 임시정부에서 재정실무를 담담하였으며 김구 선생 등과 의용단을 창단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나 과로로 인해 29세에 순국하였다. 선생의 유해는 대전국립묘지에 안장 되어 있다.
구포초등학교는 2019년부터 일제잔재 청산활동을 해왔다. 설문조사와 학생·학부모·총동창회가 참여하는 토론회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여 ▲교목 변경(히말라야시다→소나무) ▲이은상의 시 가림막 설치 ▲학생들 정서에 맞게 교가 내용 수정 ▲차렷·경례 등 일제 용어 대체 활동 등을 해왔다. 또 윤 선생 포토존 설치, 캐리커처 스티커 제작, 흉상 비문 공모 등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흉상 건립기금 1000만원은 윤현진 흉상건립위원회에서 물통, 우산, 배지를 제작·판매하여 마련하였다.
 

최종수정일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