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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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가을 단상

  • 2022-10-26 14:42:38
  • 정영미
  • 조회수 : 559
이제 제법 가을 느낌이 난다. 아침저녁으론 꽤 선선해서 긴 옷을 입어야 할 정도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4계절을 누릴 수 있는 이 땅에서 산다는 게 참 감사한 일이다. 아무리 더워도, 아무리 추워도 곧 이 계절이 끝날 거라는 기대감이 있기에 더위와 추위를 잘 견뎌낼 수 있는 것 같다.
가을의 풍경은 참 맑다. 하늘도 깨끗하고 피부에 와 닿는 공기도 산뜻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이 좋은 기분은 봄에 느끼는 ‘기분 좋음’과는 차이가 있다.
봄의 기운은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고, 두근대고 설레고 마음이 붕 뜨는 것 같아 주위의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 보이는 ‘기분 좋음’이지만 가을의 기운은 차분해지고 사색적이 되고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하는 그런 ‘기분 좋음’이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나의 이 ‘기분 좋음’은 점점 울적한 기분으로 바뀐다. 가로수들이 노랗고 빨간 옷으로 갈아입고, 물든 나뭇잎들이 떨어질 때면 나도 모르게 가슴 저 밑으로 뭔가 ‘쿵’하고 떨어지는 기분이다. 젊었을 때는 ‘가을앓이’를 무척 심하게 했다. 내 그림자가 길어지는 이즈음부터 가로수가 잎을 다 떨어뜨릴 때까지 혼자서 가을을 느끼며 가을을 떠나보낼 준비를 하는 것이다.
괜히 전시장을 기웃거리고, 연극이나 공연을 보러 가기도 하고, 가까운 곳에 여행이라도 가 볼까 인터넷 검색도 해 본다.
직업의 특성상 자리를 길게 비울 처지가 아니라서 늘 마음으로만 그쪽을 서성이지 정작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가 않다. 하지만 올해는 10월에 연휴가 2주에 걸쳐 있어 벼르던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 여행을 실행에 옮기는 데 10년이 더 걸린 것 같다.
코로나19로 많은 피해를 봤고, 그 이후로도 코로나19 이전의 상황으로 회복이 되진 않지만 더 미루지 않으려고 한다. ‘언젠가는’이 아니라 ‘지금’ 가야겠다고 마음을 바꾸니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여행을 다녀오면 그 추억으로 이 가을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박경혜 / 화명동
 

최종수정일2020-11-20